전라도 말 사잇길
전라도 말 사잇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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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말의 무차별한 공격..., 두번째 이야기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관념이었다. 물론 관념이라는 단어를 배웠다는 것은 아니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세계로 이루어진 교과서가 관념 덩어리였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교과서 속의 아이들은 우리와 노는 방식이 달랐다. 공차기 놀이가 나오는데, 나는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우리가 축구공으로 사용했던 것은 헌 실을 둥글게 감은 실꾸래미(실꾸리)나 돼지불알 정도였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진짜 축구공이 그려져 있었으니, 생전 보지도 못한 물건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은 대단한 것이었다. 산수라는 것은 처음 해 보았지만, 계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개수를 말하는 데서 차이가 있었다. 가령 사과 다섯 개를 묶어 두고 개수를 쓰라는 문제가 나온다거나 하면 나는 어김없이 골머리를 앓았다. 한나 : 하나 뚤. 두나 : 둘 싯. 시나 : 셋 닛. 니나 : 넷 다서. 다써 : 다섯 녀서. 녀써 : 여섯 일고. 닐곱 : 일곱 야달 : 여덟 아곱 : 아홉 녈 : 열 수물 : 스물 수물 한나 : 스무 하나 만 한나 : 마흔 하나 신 : 쉰 야든 : 여든 개수를 쓰는 문제에서만 아니라, 하나에서 백까지 세는 것을 배울 무렵, 발음상의 문제로 인하여, 위에 열거된 숫자들은, 내 머리에 꿀밤을 무수히 떨어지게 하였다. 하나 둘 셋 넷을 무사히 넘어갔다 싶으면, 내 입이 아닌 듯 내 입에서 나온 '다써'라는 발음. 염소 깨삐를 아무데나 묶어두고, 하루종일 외우고 들어와서, 아버지에게서는 염소 굶겼다고 야단 듣고, 형 앞에서는 어김없이 '스물'에서 틀려 꿀밤을 맞아야 했던 기억들. 지금은 삼십 년이 다 되어 희미하게 눈웃음짓게 하는 추억이지만, 그 때 당시의 나는 얼마나 곤혹스러웠던가. 하지만 그렇게 나에게 꿀밤을 주었던 형도, 일상 생활에서는 한나 뚤 싯 닛 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보면, 이질적이었던 표준말이 생활까지는 장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학교라는 공간은 나에게 무척이나 다른 세계였다. 그러다가 내가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2학년이 되어서였다. 담임을 맡으신 분이 유난히 옛이야기를 잘해 주셨다. 한시라도 이름을 잊은 적이 없는 류한심 선생님. 그분은 하루에 한자리씩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야기 속에는 항상 찢어지게 가난한 주인공들이 나오는데, 한결같이 나처럼 다 헤진 옷을 입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어김없이 착하게 살았고, 결국에는 복을 받게 된다. 특히 금 나와라 뚝딱! 하면 우르르 쏟아지는 도깨비 방망이는 얼마나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던가. 나는 동무들이랑 도깨비가 살만하다고 여겨지는, '삼사모탱이'나 '천지똥'을 일부러 가보기도 하였다. 반면에 옛이야기에 비해 교과서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생전 보지도 못했던 운동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차 여행, 내가 아는 것과 너무 동떨어진 경찰과 군인의 이미지 등.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관념덩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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