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씨실되고 나눔은 날실되어
사랑은 씨실되고 나눔은 날실되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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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방직 소녀'들의 행복재활원 봉사/ 심야작업 힘든 몸 이끌고 매주 재활원에/ 가족들도 외면한 정신.발달지체인들에 '웃음' 선물/ 주고도 풍성해지는 나눔의 마음 "더 많이 배워요"// 광주시 동구 지원동 행복재활원을 찾아가는 택시 안에서 일신방직 '소녀'들은 꾸벅꾸벅 졸았다.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이들에게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심야작업은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그러나 행복재활원을 들어서는 순간 이들은 얼굴표정이 확 달라진다. "우리의 이쁜 모습을 보여줘야 기뻐하지 않겠어! 하하..." 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오늘 행복재활원 사람들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에. 이곳은 큰 일거리는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장애인들과 함께 놀아주고 혼자서는 숟가락도 못드는 재활원 식구들에게 점심을 먹여주는 것이 봉사팀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이 시간을 기다리는 눈치다. 방에 들어서자 마자 침대에서 힘겹게 고개를 돌려 봉사팀을 바라보는 사람, 높은 칸막이 침대에서 팔짝팔짝 뛰는 사람, 소녀들에게 엉금엉금 기어오는 사람. 모두들 '반갑다'는 인사다. "안녕, 언니랑 놀자 몇 살이야 이름이 뭔데" 봉사팀은 제각기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장난감을 쥐어주며 말을 건넨다. "이름은 김보배. 나이는 23살이예요" 행복재활원 직원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봉사팀의 눈들은 휘둥그레진다. "겉보기엔 이제 4살 정도 된 것 같은데 '언니'였다니" 보배에게 과자를 건네주던 이진선 양(18)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발달지체 장애를 가진 보배는 4살 정도의 몸집에서 더 이상 크지 않은채 2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 보배는 아직도 기저귀를 착용해야 하며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상황이다. 보배의 부모는 행복재활원에 아이를 맡기고 가끔 한번씩 들를 뿐이다. 이곳에는 보배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무려 110명이나 머물고 있다. 이런 재활원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봉사팀. 삶의 기쁨이 뭔지조차 모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이 선물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서 진땀을 빼던 중 갑자기 침대 쪽에서 문세정 양(21)이 환호성을 지른다. "어? 나를 보고 웃었어. 영주가 날 보고 분명히 미소를 지었어. 이것 보라구". 사람을 봐도 절대 웃지 않던 영주가 세정이의 노력 끝에 드디어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던 것이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몰라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즐겁게 해 주는 것 밖엔 아무것도 없는데 영주가 도무지 웃질 않아서 미안해졌거든요"라고 말하는 문양은 자신이 남을 기쁘게 해 '웃음'을 선물한 것이 뿌듯하기만 하다. 일신방직 봉사팀이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봄. "여기서 일하는 것도 많이 힘들텐데 학생들이 자진해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겠다고 찾아왔어요" 기숙사 인력관리 최순자 씨의 말이다. 일신방직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500여명.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보겠다고 이곳에 들어온 이들은 A,B,C반으로 나누어 3교대로 작업을 진행한다. 오전7시부터 오후 3시가 주업,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 초야업,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심야업. 그래서 삼일에 한번 꼴로 심야업을 하는 것이 현실. 또, 일이 끝나면 일신방직 내에 마련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중.고등학교 수업이 학년별로 진행되는 이곳은 졸업을 하면 전남중.고등학교 명의의 졸업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하루 24시간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일요일 '특근'을 제외하면 일주일 중 쉴 수 있는 시간은 토요일뿐. 그러나 일신방직 봉사팀은 '황금 같은 휴식'을 봉사활동에 바치고 있다.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으면 돕고 사는 게 삶의 기쁨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신유미 양(18)은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은 어른 못지 않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봉사활동은 얼마전까지 미혼모 아이들을 돌보는 영아소에서 진행됐으며, 지금은 매주 토요일 행복재활원을 찾고 있다. "처음에는 나눔이란 내 것을 줘 버리는, 그래서 내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눔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고, 또 주고도 내 안에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 나눔이었습니다" 이것이 일신방직에서 일하는 10명의 소녀들이 행복재활원에서 찾은 '사랑'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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