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전쟁 속의 봄나들이
[투데이오늘]전쟁 속의 봄나들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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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호남학진흥원 전문위원.광산중 교감]

누구나 한번쯤 아주 먼 곳으로 혼자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세상이 뒤숭숭하고 전쟁의 공포가 시시각각 우리의 봄나들이마저 앗아가고 있는 시절에는, 평소에 즐겨 찾던 곳으로 아무도 모르게 도망이라도 치고 싶어진다.

죽장망혜는 오히려 사치스러울지도 모른다. 평소의 입성 그대로 훌쩍 떠나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늘 땅 어디든 발 가는 대로 맡겨두고 물처럼 구름처럼 흐르는 운수행각이면 어떠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걸 '눈부신 승리가 계속되고 있다.'라고 자찬을 늘어놓는 짐승만도 못 한 자들이 날뛰는 세상을 조석으로 지켜보아야 한다니 참으로 기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전쟁에 광분한 자들에겐 신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성, 야만, 저주, 멸망, 그런 것들은 로마제국의 역사에서나 읽었음직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옛날 추억처럼 떠오르는 어딘가 깊고 깊은 산중을 홀로 헤매고 싶은 것이다. 장자처럼 이름난 산꾼이 아니더라도 지리산은 산중의 산이다. 칠선계곡의 탁족(濯足)은 일러무삼하리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산속에 은둔하여 유유자적하기보다는 들이나 강으로 나오는 것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우리의 산야 가운데서 섬진강줄기는 천하제일이다. 광양 백운산과 지리산 사이로 흐르는 섬진강은 분단의 모진 고통을 안고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경칩을 전후하여 고로쇠나무나 기재수나무 수액을 마시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온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그게 '여순사건'이나 '남부군'의 혈맥임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진강변만은 혼자서 걷고 싶다. 매화꽃 축제도 보고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아니더라도 그곳에 가면 사향노루, 반달가슴곰, 수달의 숨소리가 들리고 오미자, 탱자나무, 익모초가 향그럽다.

성제봉 아래 평사리는 박경리씨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취나물이 좋기로 유명하고 자지러진 벚꽃을 보면서 강바람을 마시다 보면 '재첩' 캐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강변을 산책하는 나그네의 '고독한 몽상'은 끝없이 나래를 편다. 무도한 세상일수록 현자의 목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리산 동쪽 기슭의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 선생이 공부하던 곳이며 서쪽 기슭엔 한말 절의로 이름 높은 매천 황현의 매천사가 자리하고 있다. 남명은 평생을 처사로 숨어지내면서 조선유학을 한 단계 높여 놓은 분이다.

'두류산 양당수를 예듣고 이제보니 /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 아이야 무릉이 어디메냐, 나는 옌가 하노라.'


남명이 합천에서 집과 토지를 버리고 빈손으로 지리산 자락에 숨어들어 처음 지은 시이다. 그는 이곳에서 산천재라는 학문의 도장을 열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을 가르쳤다. 일생을 산림에 묻혀 고고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왕과 신하는 붕우의 관계지만 군왕은 선비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처사는 군왕과 관리 위에 서서 군왕과 관리의 비정을 비판하는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구례읍에서 천은사 쪽으로 가다보면 광의면 월곡리에 매천사당이 있다. 매천은 1855년 광양에서 태어나 구례로 옮겨 살았다. 소시 적부터 시를 잘 짓는다하여 향촌에선 신동으로 알려졌다.

나이 20에 서울로 올라가 강화학파에 속한 이건창을 만나면서 그는 생애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을사조약후 김택영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경술국치로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것이 모두 이건창과의 만남에서 얻은 바가 컸다.

이건창의 조부 이시원은 판서를 지낸 조선왕조의 종친이었다. 그가 고종 3년 (1866) 초가을 병인양요 때 프랑스함대가 강화도성을 포격하자 성을 지켜야 할 고관들이 모두 도망쳐버렸다. 이시원은 그것이 분했다. 국은이 망극해서 혼자 죽어야 할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건만 그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고자 선영 앞에 하직하고 스스로 자결하였다. 매천의 사생결단도 이와 같았다.

'짐승도 슬피울고 강산도 시름 / 무궁화 이 세상은 가고 말았구나 /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헤아려보니 /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소그려.'
매천이 남긴 절명시 가운데 한 수이다. 그는 섬진강을 서정적으로 읊기도했다.
'펑퍼진 맑은 강물이 삼십리 / 비단 같은 쏘가리는 지천이구나.'


화무는 십일홍이라 했는데 봄날은 그렇게 빠르게 지난다. 속전속결이라 하지만 전쟁은 날로 심각한 양상으로 변모해 가면서 장기화될 조짐이다. 국익을 위해 침략자의 편에 서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무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연합군이라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뉴스를 흘려 들으며 남명과 매천의 삶 앞에서 옷깃을 바로 세워볼 일이다.

/정규철(호남학진흥원 전문위원. 광산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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