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쟁과 파병의 시대 유감
[특별기고]전쟁과 파병의 시대 유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갑길 국회의원(민주당.광주광산)

현생 인류의 학명은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다. 알다시피 지혜로운 인간,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지구촌 저편 이라크에서 '죽음의 향연'을 즐기는 자들과 아무런 명분 없는 전쟁에 협력하는 인류를 보면 이 어원이 그리 어울리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세계적인 반전여론이나 UN헌장, 국제법과 같은 인간 이성의 산물은 오간 데 없고 그저 '약육강식의 자연 법칙'만이 작동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은 '침략자의 동물적 본능'을 보란 듯 뽐내며 이라크인들을 '죽음과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걸프전 이후 12년 동안 지속된 UN의 경제제재로 이라크는 이미 150만명을 잃어야 했고 이번 공격으로 또 다시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예상되는 50만명의 사망자 가운데 절반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될 것이라는 외신을 접하면서, 반세기 전 한국전쟁기에 이 땅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학살당했던 참상이 다시 뇌리를 스치는 것은 나만의 상념일까.

부시는 정말 대단한 효자

부시는 정말 대단한 효자인 것 같다. 지난 91년 아버지 부시가 '사막의 폭풍'을 등에 엎고 이뤄내려 했던 숙원을 12년 간이나 잊지 않고 '모래 폭풍(shamal)'과 맞서며 '보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효자 아들 부시이지만 이라크인들의 모정(母情)이나 생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라는 이라크출신 13세 소녀의 애처러운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초에 조지 W. 부시는 이라크가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결돼 있고, 미국은 '대량살상 무기로부터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며 '세계 평화 수호'를 위해 테러를 발본색원하겠다는 공격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라크 공격의 진정한 의도가 중동의 석유패권 장악과 부시의 정치적 기반인 군산복합체 살찌우기 등 미국 정칟경제의 활력 찾기에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이를 말려야 할 UN 등 국제 사회는 힘의 논리에 밀려 패권국 미국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약소국 우리나라도 여기서 크게 예외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국익'을 이유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파병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명분이나 논리보다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에 기초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그동안 자주외교를 강조해왔던 만큼 이번 결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뇌를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지만 이번 결정은 인도적으로나 보나 우리 헌법정신에 비추어 보나 잘못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또 제5조 제1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불법적 침략전쟁인 이라크전 파병은 위헌적 소지가 있는 행위로 결코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절대적 국익은 한반도 평화

세계평화라는‘명분’을 버리고 국익이라는‘실리’를 추구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북핵위기가 고조돼 가는 현실에서 우리의 절대적 국익은 '한반도 평화'라 할 수 있고, 두 번째 국익은 경제적 이득일 것이다. 두 가지 국익 모두 소위 튼튼한 한미안보의 동맹논리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핵무기개발을 의혹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한미동맹과 이번 파병 논리만으로 우리의 외교적 주도권을 인정하고 대화와 평화적 방법을 선택할지는 극히 회의적이다. 미국은 입증되지 않은 의혹만으로도 동맹국과 세계의 반전여론을 뿌리치고 이라크를 치고 있지 않은가.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에 미국은 '동맹'이라는 이유로 5억달러의 전비를 우리 한국이 부담하게 했다. 이 액수는 걸프전을 주도했던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다. 자존심을 팔고 일방적으로 미국에 순응한 국가는 경제적 이익도 지킬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결국 한국이 이라크전을 지지하였다는 이유로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국익의 근거'는 매우 모호하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대화로 풀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명분 없는 전쟁에 가담하고 난 후 미국내 매파가 북한 핵문제에 강경 노선을 펼칠 때, 우리 정부가 무슨 명분으로 세계에 평화적 해결을 촉구할 수 있겠는가.

21세기를 약육강식과 야만의 시대로 돌릴 수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81%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은 우리나라 젊은이를 야만과 침략의 전쟁터로 보내는 일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전평화 의지를 존중하고 수렴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진정한 국익'을 창출해 주기 바란다.

/전갑길(국회의원. 민주당 광주광산)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