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그리워 바다에 뜬 설악
지리산 그리워 바다에 뜬 설악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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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 산이야기⑪-지리망산(398m·경남 통영 사량도)>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사량도는 온통 안개 투성이다. 우리를 실은 쌍룡호는 용암포 앞 바다의 물결을 가르면서 사량도를 향하여 돛을 올린다. 쪽빛 바다는 육지 촌놈인 우리들을 출렁이는 물결로 조용히 맞이한다. 그리고는 가끔씩 갈매기를 보내 환영의 표시를 하기도 한다.

용암포를 떠난 쌍룡호는 쏜살같이 달려 20여분만에 우리를 사량도 돈지항에 내려놓고는 어느새 멀어져간다. 돈지항에 내리자 안개 덮인 지리망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작달막한 키의 잡목 숲이 우리를 맞이한다. 등뒤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가 짜릿한 바다 냄새를 싣고 오는 바람소리와 어울려 협주곡을 만들어낸다.

설악을 닮은 아름다운 산


지리망산 서쪽으로 연결된 이쪽의 암석들은 하나 하나가 소품이다. 조그마한 암석들이 층을 이루어 마치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축소하여 옮겨놓은 것 같다. 그것도 큰 봉우리가 아니고 수반에 올려놓을 정도의 크기라 앙증스럽다.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하나의 바위지만 부분 부분은 조그마한 수석이다.

바위지대에 접어들자 안개에 휩싸여 일정 거리 이상은 볼 수가 없다. 정상에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든 등산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사량도 지리산 398m' 표지석이 정상임을 알려준다. 지리망산을 이곳 사람들은 지리산으로 부른다. 사실 '지리산을 바라본다'는 뜻의 지리망산(智異望山)은 어쩐지 종속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이어서 아예 '망'자를 떼어내고 지리산으로 부른 것 같다. 어떻든 지리산은 크고 장중한 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바다 건너 멀리서도 바라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지리산이 보인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민족의 명산, 지리산을 그리워한다. 종주 구간 중 전망이 가장 후련하게 다가오는 곳으로 이곳 정상을 꼽고 있으나 오늘은 몇 십 미터 앞도 가늠하기 힘들다.

지리망산-불모산-옥녀봉으로 연결되는 천혜의 경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더러 이들과 어울린 한려수도의 푸른 물결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모두 털어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사량도 아랫섬의 칠현산이 바다에 떠 있는 모습도 이전에 보았던 모습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

정상을 지나자 바위 길이 계속되다 잠시 숲 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낮은 지대로 올수록 가끔 한 번씩 구름이 옷을 벗어주어 통영 쪽으로 바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금방 안개 천국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 사량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옥녀봉 자락이 펼쳐지면서 길은 점점 험해진다.

“마치 설악산 용아장성릉의 축소판 같아요."
지리망산은 분명‘바다에 떠 있는 설악산’이다. 특히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설악산을 닮았다. 설악산이 바다에 떠 있으니 그 아름다움이 오죽하겠는가? 가끔 구름이 벗겨질 때는 꿈속에서 보는 몽유도(夢遊圖)가 된다. 구름이 벗었다 다시 덮였다 하는 풍경이 신비로움을 가져다준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섬 마냥. 바다 위에 사량도가 떠 있고, 구름 위에 지리망산이 떠 있다. 그래서 섬 위에 또 섬이다.

가슴속의 그리움을 찾아서


불모산을 지나 옥녀봉에 이르기까지 6개의 암봉이 기묘한 형상으로 펼쳐진다. 마당바위를 넘어 10m 정도의 벼랑을 로프를 타고 오르니 옥녀봉(261m)이다. 옥녀봉에 서린 사연은 사뭇 숙연하다.

옛날에 홀아비가 된 아버지가 욕정을 참지 못하고 성숙한 딸, 옥녀를 계속 유혹하자 옥녀는 자기가 정 탐나거든 뒷산 봉우리에서 기다릴 테니 소 벙거지를 쓰고 올라 오라 하였다. 딸의 말에 따라 욕정에 사로잡힌 아버지는 소머리를 한 벙거지를 쓰고 산을 올라갔고, 이를 본 옥녀는 바위 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던져버렸다. 그 뒤로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옥녀봉이라 불렀다. 가마 타고 시집가던 신부가 옥녀봉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가마에서 내려 걸어감으로써 옥녀의 순절을 귀감으로 삼았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마을 가까이 내려오니 안개는 온데 간데 없고 진촌 선착장과 건너편 아랫섬이 가깝다. 윗섬과 아랫섬 사이의 바다는 마치 커다란 강물이 흐르는 것 같다. 하기야 이곳 사람들은 이 해협을 동강이라 부른다 하니 예로부터 윗섬과 아랫섬을 섬으로 보기보다는 뭍으로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포구가 있는 대항마을에는 배편을 기다리고 있는 등산객들로 왁자지껄하다. 갓 잡아온 해삼안주에다 옥녀봉을 울타리 삼고 바다를 마당 삼아 마시는 동동주 한 잔은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인도한다. 아름다운 사량도에 취하고 맛좋은 막걸리에 취해 배에 오른다.

바다는 석양빛에 물들어 금빛 물결로 출렁이고 사량도는 점점 멀어져간다. 갑판에 서서 지리망산을 바라본다. 지금도 여전히 안개는 걷히지 않아 지리망산과 옥녀봉은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다.
지리망산에서 지리산을 그리워했듯이 나는 쌍룡호의 갑판에 서서 지척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지리망산을 그리워한다. 소중한 것은 지리산을, 지리망산을 가슴으로 그리워하는 것리라. 배는 어느새 용암포에 도착해 있다.





▷산행코스
-. 돈지(40분) → 삼거리(40분) → 지리망산(30분) → 성자암 갈림길(1시간 20분)→옥녀봉(1시간) → 금평(또는 대항) (총 산행시간 : 4시간 10분)
▷교통
-. 남해고속도로 사천교차로를 빠져 나와 3번 국도를 타도 삼천포까지 간다. 삼천포에서 58번 지방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면 고성군 하이면 용암포에 닿는다.
-. 삼천포항(055-832-5033)과 통영에서도 사량도행 배가 운항된다. 삼천포항은 삼천포 시내에서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www. chosun.ac.kr/~gs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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