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신광조님께-계획은 차갑게, 추진은 뜨겁게
<정병준>신광조님께-계획은 차갑게, 추진은 뜨겁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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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님의 목소리에 고향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아직 인사를 드리진 못했지만, 광주시청에서 신광조님의 성함은 자주 들었습니다. '8월이면 귀국하실테니 기대해보라'는 분도 계셔서, 그렇지 않아도 어떤 분인가 궁금해하던 참이었습니다.

먼저 변변치 않은 글에 진지한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문화수도론'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상황에서 차근차근 따져보는 진지한 논의가 꼭 필요한 때였습니다.

정부 돈들여 미술관 건립 과연 옳은 가
시민들 문화적 삶 영위에 초점 맞춰야


지금 광주는 한 마디로 문화수도론의 폭풍이 일고 있습니다. 문화수도, 문화도시 운운하면서, 보여줄 것, 드러내어 뽐낼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도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광주가 논의의 출발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줄 그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더 문화적인 삶을 영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하나 둘씩 모이면 진짜 문화도시가 될 것입니다.

지난 달 잠시 미국 취재를 다녀왔는데, 그 사람들 하는 일이 참 따북따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이 땅에 연고주의가 참 문제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형식주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산업론'에 대한 논의는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문화산업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구체적 방안을 찾는 방식은 옳지 못합니다. 한 지역의 발전전략을 세우는 일이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습니다.
광주는 그동안 광산업과 첨단부품산업 태양열산업등 5대 산업을 추진한다고 밝혀 왔습니다.

그러나 광산업을 비롯한 한두 가지를 빼고 나면 각 산업에 대해 광주시가 축적해 놓은 연구는 A4지 4-5장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문화산업을 하나 더 하겠다는 것입니다.

한 시기에 한 지방자치단체가 육성하는 산업은 하나 또는 둘, 작을수록 좋다고 봅니다. 여러 개의 산업을 다 성공적으로 육성할 능력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는 없습니다. 그러다간 모두 실패합니다.

최근 광주는 현대미술관을 지어도 운영비를 충당할 길이 없다며 정부가 운영을 맡아 줄 것을 건의하기로 했습니다. 지역 언론도 잘한 일이라고 맞장구를 칩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 쯤이면 정부지원을 받아 미술관을 짓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집어보고 싶습니다. 중앙정부에서 받아 올 수 있는 예산은 한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돈을 투자할 대상은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광주시민들이 좀 가난하게 살아도 문화도시라는 자존심을 가지고 살겠다면, 그렇게 사는 데 모두 동의했다면 추진해도 좋은 일이겠지요.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투자효율이 높은 대상을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정부가 다른 지역과 형평을 넘어서서 광주지역 지원을 무작정 늘려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주발전위해 미친 사람 10명과
밤새워 토론하는 날 가져봤으면…


저는 지금 광주에서 머리를 싸 메고 논의해야 할 것은 '문화산업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광산업 이후의 광주, 주력산업은 무엇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산업을 택해서 광주가 주도하자는 신광조님의 주장은 우리를 가슴 설레게 합니다. 그러나 그게 당장 가능하지 않다면, 세계를 주도 할 순 없더라도 한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도의 산업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쫓아 실패하기 보다, 차선을 택해 성공하는 것이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길이 아닐까요. 부산의 해양산업, 창원의 기계공업, 강원의 관광산업이 꼭 모두 세계 제일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기회가 있다면 환경산업을 광주가 추진할 차세대 산업으로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디자인센터 육성을 위해 광주에서 10명만 미쳐보자는 님의 말씀은 가슴 뭉클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은 뭔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미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주발전을 위해 미친 사람 10명과 만나, 밤새 울고 웃고 토론하는 날을 하루라고 가져 봤으면 좋겠습니다.

마감시간이 넘었다는 이 편집장의 재촉에 밀려 글을 거칠게 마감합니다. 제 글에 진지한 관심을 보내주신 데 대해 예의를 다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8월에 돌아오신다고요. 돌아오시면 기대해 보라던 어느 공무원의 말처럼 넓은 땅에서 키워 오신 많은 지식을 마음껏 펼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먼 타국에서 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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