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 '계단식 논', 설치미술과 '文史哲'
피아골 '계단식 논', 설치미술과 '文史哲'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단적 미학주의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의 <피아골 계단식 논>이라는 글에서, "내가 연곡사를 남달리 사랑함에는 연곡사로 올라가는 피아골 골짜기의 계단식 논의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서 그는 '계단식 논'을 피아골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추켜세웠다.

피아골은 지리산 수백 골짜기 중에서도 계류가 크고 깊어서 연곡천이라는 이름을 따로 갖고 있으며, 골짜기 위로 트인 하늘은 넓고 밝아 어느 계곡보다도 기상이 호방한데 그 골짜기로 기운 경사면을 계단식 논으로 쌓아올린 신기로움과 아름다움은 차라리 눈물겨운 것이기도 하다. 옛날 우리의 논배미는 거의 다 계단식 논이었다. 경작지라고 해야 들판보다 비탈이 더 많은데 논에는 물을 댈 수 있어야만 하니 천수답이 아니라도 위에서부터 물을 대야 논을 고루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계단식 논의 굽어진 논배미는 조상들의 슬기와 삶의 멋이 한껏 배어 있는 우리 땅의 가장 아름다운 전형적인 표정으로 되어 있다. 경지정리가 되면서 계단식 논은 우리 주위에서 자꾸 사라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우리네 향토적 서정의 징표가 되고 있다. (중략) 그런 계단식 논배미의 마지막 보루가 여기 피아골이다. 가파르게 계곡으로 내리지르는 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자니 비탈마다 보통은 몇 십 계단의 논으로 석축을 쌓았는데 논배미가 작은 것은 겨우 열 평 남짓 되는 것도 있고, 높게 쌓은 석축은 사람 키 두 길이나 되는 것도 있고 또 봇물을 끌어댄 물길이 '실하게 두 마장은 되는 것'도 있다. 그리고 숲속으로 돌아간 논두렁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비탈엔 거의 100층의 논배미가 계단을 이루고 있다. 정말로 장관이다. (중략) 피아골 계단식 논, 그것은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우리 조상들이 장기간의 세월 속에 이룩한 집체창작이며,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고 자연과 예술이 하나 됨을 보여주는 달인들의 명작인 것이다. 계단식 논이 살아 있는 한 피아골은 살아 있고, 그것이 살아 있을 때, 피아골은 살아 있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48∼50 쪽). 피아골의 '계단식 논'은 분명한 역사적 공간이다. '역사적'이라고 한다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과 특정한 사람들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피아골에 계단식 논을 만든 사람은 특정 개인이거나 집단이었을 것이고, 이는 특정한 시기에 이루어졌을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공간을 평가할 때는 당연히 그것을 배태한 '역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피아골의 '계단식 논' 또한 특정 시기에 특정인이 만든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가 언제 왜 그리고 어떻게 이 논을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가 우선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며, 이것이 피아골의 '계단식 논'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유홍준의 위의 글에서는 이와 같은 기초적인 역사인식은 배제된 채, 오로지 현존하는 결과만을 대상으로 지극히 추상적인 미학적 평가만 남아 있다. 이에 그의 답사기는 역사적 공간을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역사성이 빠져버린 공허함이 느껴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홍준의 명망성과 이로 인한 문화권력에 힘입어 독자들에게 피아골에 대한 모범적인 답사기로 읽혀지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피아골에 관한 그의 글이 왜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피아골을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고 자연과 예술이 하나 됨을 보여주는 달인들의 명작이다" 혹은 "피아골 계곡의 벼랑을 계단식 논으로 만든 것은 자연을 대상으로 벌인 최대의 설치미술같다"고 평가했다. 설치미술이란, 작가가 의도적으로 사물들을 구성·배치하여 예술화시킨 작품세계를 뜻한다. 즉, 자신의 예술세계를 독특하게 표현하면서, 궁극적으로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예술적으로 인식시키려는 의도가 궁극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작품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아골에 '계단식 논'을 만든 특정 시기의 특정인은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인 예술미를 전달하기 위해 그 힘든 노동을 했단 말인가? 차마 그랬을 리는 없다. 때문에 유홍준의 평가는, 역사 속에서 그 논을 만든 주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현상에 대한 단순한 미학적 관찰에 불과한 것이다. 문화유산 새로운 코드읽기 -文史哲 역사적 산물을 오직 미학적 관점으로만 평가하는 작업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행여 그 유물과 유적이 지녀온 역사성이 매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점은 유홍준도 잘 알고 있었는지, "세상이 급박하게 흐르고 있을 때, 책상머리에 앉아 '아름다움'의 문제를 따지는 것은 매우 사치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周鈞韜 지음, 유홍준 편역, {미학에세이}, 청년사, 1988, 11쪽)고 우려한 바 있다. 우리가 문화유산의 현장에 가서, 어떤 문화재를 관람한다는 것은 그 문화재와 내가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을 의미한다. 그 관계는 몇 미터 떨어져 있다는 공간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역사적 시간과의 거리를 어떻게 메우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몇 백년 전에 그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생활하고 땀흘려 노동했던 특정인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홍준과 문화유산의 연결고리는 언제나 '아름다움'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 있어서 특정 시기의 특정인의 삶이 온통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때문에 과거의 문화유산에 대해서 오로지 미학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일은 충분히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지금까지 맹위를 떨쳐왔던 유홍준식의 문화유산 코드 읽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즉, 문화유산에 대해 오로지 아름다우냐 그렇지 않나 하는 것만 따지는 일은 그 역사적 시효를 다했다는 것이다. 김병인 교수
이에 우리는 앞으로 그 문화재가 품고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의 흔적들을 아울러 포착하는 새로운 코드 읽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접근, 철학적 사유에 바탕을 둔 인식,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정확성의 규명 등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즉, '문 사철(文史哲)', 다시 말해서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공유하는 문화유산 코드읽기가 가능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잘 쓰여진 미술사 연구서는 결코 옛 그림이나 조각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옛 그림이나 조각에 담긴 화가와 조각가의 생각, 시대적 배경, 그리고 표현기법과 양식에 대해 말할 따름이다"는 한 연구가의 독백은 분명 진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