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북 송금 , 정치로 풀어라
[기고]대북 송금 , 정치로 풀어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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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광주권발전연구소장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과 함께 중대한 정치위기에 봉착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 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융자받아 북한에 제공했다는 것이 감사원이 현대 상선으로부터 받은 보고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자금의 성격을 대북 경협 자금이니 평화비용이니 하는 등의 표현으로 적당히 호도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군부독재와 싸울 때 같으면 그가 어떤 거짓말을 해도 국민들(주로 호남인들이지만)은 막강한 독재 권력에 맞서 죽지 않고 버티려면 그 정도의 거짓말 정도는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제는 김대중 씨의 어떤 거짓말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남북경협은 국민들이 환영

남북한 간에 경협을 반대할 국민은 없다. 상대가 경제적으로 약할 때는 무상으로 원조도 할 수 있고 장기 저리로 재화를 공급할 수도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남북한간에 이러한 거래가 시작되고 발전하는 것을 환영한다. 남북교류를 지지하는 국민이 대체로 67%를 상회하는 여론조사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대 상선이 북측에 제공했다는 거금은 경협자금이라고 인정할만한 근거가 불명하다. IMF의 위기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수 억불의 돈을 돈세탁을 하여 당국의 묵인과 지원 하에 북측에 송금한다는 것은 남북경협의 논리로는 도저히 타당한 처사로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현대 상선이 사재를 털어 북한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정부 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국회의 동의를 얻은 예산의 범위 내에서야 한다.

대통령 개인 돈도 사전승인 받아야

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다할 것을 다짐한(헌법 69조)점으로 미루어 평화통일의 길을 트기 위해 북한에 통치권 차원에서 지금지원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국회의 정보위원회나 여야영수회담을 통해서라도 사정과 경위를 사후에라도 보고하고 양해를 얻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그러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산업은행에서 융자받아 북한 김정일 구좌로 송금한 자금을 추후 어떻게 상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이 문제가 공론화된 작년 9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증언에서 한 푼도 북에 준 일이 없다고 거짓 증언을 하였다.

박지원 비서실장의 두 가지 거짓말

그 후 자금 지원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북에 송금한 돈과 정상회담은 무관하고 현대가 대북사업독점권을 얻기 위한 대가로 5억불이 제공했다고 말했다. 현대의 독점사업권을 위한 대가이론이 타당하려면 두 가지 사태를 가정해야 하는데 하나는 북한주도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수용할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 설사 통일이 북한주도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북한체제의 특성상 독점권이 유지될 수는 없다.

따라서 독점권 주장도 거짓이다. 국민들이 알 수 있는 정답은 김대중 대통령이 원하는 남북정상회담에 응하는 조건으로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화(hard currency)로서 달러를 요구했고 이 요구를 듣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들이 현대로 하여금 융자를 얻게 하고 그 돈으로 결제를 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남측으로부터 송금 날자가 안 지켜지자 북한은 정상회담을 하루 지연시켜 송금이 확인된 후에 비로소 회담에 응했다는 것이 시중의 이야기다. 노벨 평화상 수상은 그 자체로서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 해에 남북정상회담을 함으로써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송금의 약효는 대단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가짐으로 해서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북의 연방제와 남의 연합제 간에 공통성이 있다거나 이제 한반도에는 전쟁위험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문제발언만을 제외한다면 남북간에는 인적 물적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해졌고 수차례에 걸친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의 전망이 트였고 금강산 관광의 시대가 열렸으며 경의선 연결공사가 시작되었고 동해선과 금강산 육로관광의 문을 열었다.

남북한사이에 긴장이 줄어들고 개선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의 가치를 따진다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성과(unaccountable results)를 얻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분위기속에서 우리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고 부산 아시안게임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결상대로만 보아오던 북한을 대화와 교류의 상대방으로 보는 인식상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정치적 타결을 건의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송금은 너무 많은 불법요소를 담고 있다. 성과를 내세워 과정과 경위 속에 감추어진 불법을 용납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돈 준 사람의 문제점을 지나치게 따지다 보면 받은 측에도 불꽃이 튀길 수 있다. 남북한 관계의 개선이 우리의 목적이고 긴장완화가 우리의 바램일진데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간의 대화를 뚫기 위해 사용한 경비문제는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즉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겠다는 취임선서상의 의무이행과정에서 일어난 절차상의 흠결로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특별검사를 임용하여 파헤침으로써 국민적 궁금증을 해소하고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다를 위법가능성을 방지하자는 취지에도 국민들의 큰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러나 민족의 장래문제를 풀기 위한 정상회담을 북측이 돈 몇 푼 받고 응해왔다는 식으로 폄하 하게 되는 사실구명방식은 남북관계의 장래를 생각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점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금후의 남북관계는 언제나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하고 투명성을 보장할 것을 전 국민에게 새롭게 다짐하고 김대중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범한 대국민 기만 언동과 김대중 대통령의 불성실한 해명에 대해서는 역사에 그 평가를 맡기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된다. 정치권이 이런 방향으로 뜻을 모어주기를 건의한다.

/이영일(광주권발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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