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압 매화마을 봄향기에 취하고…
다압 매화마을 봄향기에 취하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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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바라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바라 '봄'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뿌연 매연으로 덮힌 도시의 일상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눈을 감았던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계절, 그것이 봄이다.
그 봄을 찾는 것은 그리움의 켜에 의해 감지하는 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형광등처럼 깜박거리며 겨우 봄을 찾아내는 사람은 도시화의 길에서 불우한 삶이거나 혹은 삶의 중심이 입고 먹고 자는데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앞에 "워메 더운 것. 봄이 와붓당께" 이렇게 외치며 천연덕스럽게 출근길 매화나 산수유가 울음을 터뜨린 것을 화제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의 마음은 항상 그리움에 대한 연정으로 쌓여 있는 이일 것이다.
전라도는 어쩌면 그런 그리움이 전체를 차지하는 고장인지도 모른다. 해마다 한반도에서 봄이 제일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런 남도의 봄은 물길을 따라 어머니의 품으로 찾아오는 날쌘 은어처럼 번쩍거리며 섬진강의 다압에서 빛난다. 그곳은 온 동네가 꽃대궐이다. 간전교 넘어 섬진강을 왼편으로 끼고 삶의 순리처럼 흘러가는 그 강물에 마음 적시기도 전에 매화의 향기는 대금의 소리처럼 바람을 따라 코끝을 파고든다. 그 향기는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싸구려 향수를 뿌리고 목욕탕에서 바로 나온 번질한 얼굴의 대중이 풍기는 향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고필

길을 따라 갈수록 바람결을 파고드는 향기에 차창을 열면 갓 낳은 아이의 방에 젖어있는 모유의 은은한 내음처럼 번지어 오다 이내 차안이 향기로 넘쳐나고 은근히 취해 버린 듯한 매력이 있다.
날이 궂거나 비가 온다고 그 길을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등을 떠밀어서라도 보내고 싶다. 젖어있는 산하는 매화의 향기가 날아가는 것을 꽁꽁 묶어 버릴 것이고 시린 마음도 모두 녹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발 내딛으면 푹푹 올라오는 도망치지 못한 매화향의 황홀함을 펜으로 옮기기에는 내 내공이 너무 짧아 이쯤하고, 이제 다압에서도 가장 큰 매실농원 청매실 농원으로 걸음을 옮기어 본다.
2200개의 항아리들의 도열 사이로 장독을 들어올리면 해 묵은 매실의 향취가 코를 찌른다.

방긋 방긋 터지는 꽃망울 일상 시름 '싸악'
잔설 입은 지리산 껴안은 한폭의 수채화


매화꽃의 은은함에 조금 취했던 사람들은 이 매실의 향기에 결국 완전히 취해버릴 수밖에 없다. 농원의 판매장안에는 시식코너가 분주하게 움직이니 매실이 주재료인 된장, 장아찌, 고추장, 원액 등의 맛을 보고 배앓이에 대비하여 한 개쯤 사와도 그다지 후회할 일은 못된다.

©전고필

그런 다음 매실농원의 뒤안으로 가보면 거기 분죽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치마처럼 펄럭거리고 있다. 그리고 가득 피워낸 매화꽃과 좁은 길과 장독대가 가져다주는 풍광은 잊었던 고향의 정경이 여기 그대로 있음에 대해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으로 발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보지 못하는 경관은 또 있기 마련이다. 언덕을 살짝 돌면 나타나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푸른 물결과 잔설이 남은 지리산의 모습이 드러내는 조화가 또 눈을 휘둥 거리게 할 것이다. 높이만 보지말고 이제 발 아래로 고개를 내려보면 거기에는 푸르름이 돋아나는 보리밭과 구름처럼 뭉게뭉게 거리는 매화꽃이 또 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눈의 황홀함이 이 정도면 사치라지만 그 동안 얼마나 봄을 그리워했는가? 그 그리움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푹 젖어 있다 버리고 간 도시로 돌아오면 남은 삼월 한 달은 매화와 섬진강과 봄에 취해 일상이 더욱 아름다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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