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풍정 문화가 숨쉬는 정겨운 마을로
고즈넉한 풍정 문화가 숨쉬는 정겨운 마을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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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댐 이후 고향마을을 생각하며

얼마 전 광주에서 올 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졸업여행으로 마을에 왔습니다. 마당에 장작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먹고 밤하늘에 깡통불로 둥근 달을 수놓으며 쥐불놀이도 했습니다. 도시아이들은 처음 하는 놀이라 서툴고 힘들어 하면서도 즐거워 했습니다.

뜨끈뜨끈한 구들방에서 잠을 잔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무너져 가고있는 수몰마을에 들렀습니다. 마을 아래 숨어있던 고대 유물의 발굴 현장을 구경하고 보림사에 들러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 속을 거닐었습니다. 백로와 왜가리의 고향이기도 한 금사마을에 가니 사람의 집과 대숲은 오간 데 없고 허허벌판에 남은 한 그루 나무에 올해도 새떼가 날아와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본 댐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장흥을 떠났습니다.

©마동욱

댐 건설과 함께 지금 고향마을은 급격한 개발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물에 잠기는 마을이야 말할 것이 없지만 수몰되지 않는 산골마을이 도시화의 길로 내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편리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자연과 사람,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무시한 획일적이고 소비적인 문명화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파괴적인 도시문명은 우선 산을 절개하고 논밭을 잡아먹으며 뻥뻥 뚫리는 도로로 시작되어 소비적인 생활방식을 강제하는 획일적인 집짓기로 완성되는 듯 합니다.

한 편 담수 이후 생길 풍광 좋은 호수를 중심으로 생태문화공원과 고인돌공원(선사문화체험유적공원) 등을 조성하여 지역을 관광화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 그리고 지역민의 정서와 생활방식이라는 전체적인 조망 속에서 충분히 조사, 연구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지역공동체의 문화와 역사를 내장하고 있는 마을과 학교의 활성화라는 문제의식과의 충분한 교감이 없는 문화사업은 평면적인 전시와 건축에 머물러 큰 매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관의 지원과 마을의 배려 속에 외부에서 젊은 가족들이 들어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작가나 목공예가와 같은 예술인 마을도 생각해 봄직합니다.)

©마동욱

그래야 마을이 살고 학교가 살아 지역에 활력이 생길 것입니다.(아이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교육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즐거운 학교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 활력으로 공원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우선은 지역민들이 즐기고 배우는 유익한 공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있는 고인돌공원은 유치마을 쪽으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이 유치에서 출토되어 유치 지역민들의 오래된 삶과 정서 속에 긴밀하게 자리잡고 있고 이주마을과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공원이 관광객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문화광장이어서 특성있는 각 마을(민박마을, 표고단지마을, 농촌체험생태마을, 문화유산마을 등)과의 유기적인 지역문화센터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교감없는 문화사업은 평면적인 전시건축
고인돌공원은 유치마을 쪽으로 조성을


여기서 우리는 고인돌공원을 조성하는데 아주 유쾌한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순천 고인돌공원을 베낄 것이 아니라 아주 다른 형태로 사고해 보자는 것입니다. 수몰로 옮겨오면서 이미 그 역사성을 상실한 고인돌을 평면적으로 전시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현장성을 새롭게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의 교정이나 마을의 논밭 가운데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쉼터를 제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봅시다. 공원에 마을 노거수를 옮겨다 심을 때 고인돌을 나무와 함께 배치하여 자연스런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물론 고인돌 야외 전시장도 필요하겠지요.)

©마동욱
그래서 너무나 오래된 무덤의 이미지를 넘어서 지금 여기 삶과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야외 전시와 공연, 야외 결혼식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선은 지역민과 수몰이주민들이 함께 나누고 즐기는 고향마을축제를 펼쳐도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 즐거움이 소리소문없이 퍼져 멀리서 구경꾼들(관광객들)도 몰려올 것입니다.

한 쪽에는 개방형의 전통가옥을 지어 지역문화, 환경생태, 문화관광 등의 주제로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열어 지역이미지를 제고하고 건강한 지역발전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활용해도 좋겠지요. 이런저런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댐으로 인한 수몰은 고향의 상실과 마을공동체의 파괴라는 끝 모를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 나누고 돕고 함께 살던 고향을 새터에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생산비도 나오지 않는 농토였지만 그 마저도 물에 잠기니 겨우 집터나 마련하여 사는 처지가 고향 근처에 남은 이들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다시 고향마을을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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