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행,봄길희망-개혁당,광주와 대구가 만나는 날
대구행,봄길희망-개혁당,광주와 대구가 만나는 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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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빛고을에 봄비가 왔다. 대구로 가는 길! 한 편으론 대구지하철 참사현장을 방문분향하고, 희생자분들을 위로하러 가는 길이라 마음이 무거웠고, 또 한 편으론 개혁당차원에서 '빛고을'과 '달구벌'이 만나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의 가슴을 열고 큰 하나가 되기위한 발걸음은 설레임이었다. 그 길에 봄비가 내렸다. 아마도 이 길이 '봄길'이 되려는지····! 동서교류,개혁당 자매결연 제1호 사람들 ©최향동

88고속도로는 꾸불꾸불 2차선으로 국도나 지방도보다 그 도로상태가 엉망이었다.동서관통의 제일문이었던 이 길, 그 동안의 난마같던 지역감정만큼이나 험한 것일까? 그래도 주변의 경치는 언제나 보는 조국의 산천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뜨거움과 사랑으로 와닿고(필자가 미문화원사건에 연루되어 86년 수갑을 차고 광주에서 대구교도소로 이감할 때도 그러했다.) 대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멀리 지리산자락엔 흰 눈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고, 착잡함과 설레임의 대구행은 어느새 숙연함으로 자리한다.

3월1일이 공휴일이어서인지 남대구에 들어서자 교통이 막혔다. 북대구IC에 도착하자 개혁당수성구당원들이 마중을 나오고 인터넷정당답게 '아이디'로 인사를 하며 환영을 했다.
개혁당차원에서는 스스로 내건 '국민통합'강령을 실천하고자 하는 제1호들이 만난 셈이다.

곧바로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분향소가 차려진 시민회관으로 향했다.분향을 하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둘러보며 모두들 숙연…

그런데 거기에도 분열의 상처는 드러나 있었다. 가지런히 놓여진 대구의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들의 근조화환, 한 쪽 귀퉁이에 쳐박아져있는 민주당과 국민통합21,민노당의 화환들,뒤쪽으로 정치와 무관해 보이는 대구단체와 개인들의 화환이 상처의 표상처럼 그렇게 놓여있다. 개혁당의 근조프래카드는 걸어논지 하루가 못지나 제거되었다고 한다. 문상에서도 이렇게 그동안의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최향동

이럴 수가,그 청년은 살았을까?


중앙로역 현장을 답사했다. 매캐한 연기냄새와 향불의 냄새가 이곳이 바로 그 참혹했던 상황을 말없이 대변해준 듯 했다. 불이 난 지하철로와 두 층이 떨어진 지하통로에서부터 온통 검게 그을린 지하내벽과 기둥들,녹아내린 공중전화부스,아비규환의 현장들! 추모객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써놓은 분노와 슬픔의 손글들!

'아버지! 혹시 저를 걱정하여 이곳에 오실 생각 아예 마십시오.절대 오시면 안됩니다.'-그 청년은 살았을까?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저 밑바닥부터 올라오는지 방문객들은 굳게 입을 다물고 안전과 재난관리의 허술함을 가슴에 담아두려는지 눈발이 다들 충열돼 붉은 색이다. 성장과 개발에만 눈이멀어 달려온 이 참혹한 결과들,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위기관리시스템은 이 곳에 없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계기로 '정부가 재난관리시스템을 점검하고 대구를 안전시범도시로 만든다'는 보도를 해돼도 이 곳 지하에는 슬픔과 분노가 앞선다. 차마 할 말이 없다. 누군가에 의해 내려졌을지도 모르는 방화문 하나 사이가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됐던 지하철 중앙로역에 '위로'는 결코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기막힘'을 간직한채 풀죽은 국화꽃무덤을 뒤로하고 지상으로 올랐다.지상과 지하의 차이란 참 묘하다. 차량통제와 검은 프래카드,그리고 추모객들이 꽂아둔 국화만 없다면 지상은 더할나위 없는 도시의 모습이다. 80년 광주가 그러했을까?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 광주가 포위되었을 때 광주 이외의 다른 도시들도 이 곳 지상의 대구처럼 평온했을까?

지상으로 빠져나온 우리들은 대구시내의 중심이라는 '동성로'를 향했다. 거기에는 대구경북 민족민주운동권의 '3·1정신계승 자주와 평화의 날' 집회가 열리며 반전과 추모의 물결이 도심 속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사뭇 다르다. 민족운동의 오랜 뿌리를 간직한 대구! 대구는 결코 동토(冬土)가 아니었다. 다만 그간의 역대정권이 악용한 지역주의에 가리워져 있었을 뿐! 희망은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온다던가? 슬픔과 분노 속에서 대구는 오히려 희망찾기를 하고 있었다.

©최향동

대구를 침투하라!


개혁당의 사람들이 저녁시간에 머리를 맞대고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들 온라인에 익숙한 터라 인사소개를 실명보다 우선하여 '아이디'로 하고, 모두들 소개할 때마다 '아! 당신이군요!'라는 친근함이 오간다. "흔들리는 꽃님이 누구시죠?"/"대파,양파는요?"/"복덕방님은?"/"이분이 바로 '꿈과희망'(대구수성을구 위원장,김태한)님입니더."/"봄길희망님,웃고살자님,cwn2002님,바람버섯님,신돌석님···"

이른바 개혁당식 인사인 셈이다. 환영과 답사가 자연스레 이어지고 2차는 대구가 자랑하는 돼지막창집으로 향했다. 자매의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거기에서 비로소 자매결연의 야사(野史)가 밝혀졌다.

광주 남구에서 먼저 국민통합차원에서 대구와 자매결연이 제기되고 이의 실천으로 온라인 게시판에 침투하여 댓글을 달아 '의구심'을 증폭시킨 뒤 적절한 시기에 '자수'하자는 침투작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대구에서는 처음 침투한 이들이 누군인가에 고심했고 대구당원들을 꼼꼼히 살펴봐도 없어 이들이 어떤 '간첩'인지 꽤 혼란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침투작전은 성공하여 지하철참사사건과 3·1절을 계기로 광주와 대구의 오작교를 놓은 셈이다.

©최향동

오작교에서 울다


술잔이 몇순배 기울더니 이윽고 대구당원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흘렀다. "80년 광주의 아픔이 있을 때 저희들은 가보지 못했습니다. 대구의 아픔이 있을 때 이리 찾아 와주니 정말 어찌 감사해야 할지···." 한 당원은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고 광주당원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그렇게 부둥켜 안고 그들은 자매형제가 된 것이다. 술판은 새벽이슬이 맺을 무렵 마무리가 되고 다음날 일정때문에 모두 숙소로 귀환했다. 무릇 술자리가 그러하듯 아침까지 잠을 물리친 주당들도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3월 2일 아침, 대구의 동화사를 찾아 동양최대의 약사여래불 앞에서 다시 자매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정식으로 오는 5월17일 대구당원들의 광주방문을 초청하였다. 상호방문을 정례화하고,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데 주저함이 없는 자매결연을 통해 이 땅에 악령처럼 떠도는 '지역감정'을 끝장내는 결의가 광주와 대구의 개혁당 당원들 가슴 속에 아로새긴 1박2일의 만남이었다.

빛고을에서 달구벌로 가는 길!
달구벌에서 빛고을로 오는 길!
길은 험난해도 가는 길이 봄비에 적시는 '봄길'이 되었고, 오는 길이 대구의 아픔과 슬픔을 이기는 '희망'으로 자리잡아 진정 이 땅에 '봄길희망'이 나래를 펴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것, 결코 그들만의 꿈은 아닐 것이다.
©최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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