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르느와르 '대수욕도'
그림이야기-르느와르 '대수욕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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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느와르의 '대수욕도' (The Great Bathers, 1918) 마치 여자와 사랑하는 것처럼 즐겁게 그림을 그려라. 르느와르가 한 말입니다. 사랑하는 것처럼 이란 말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게 정신적인 것이건 육체적인 것이건 사랑하는 것, 그 말은 곧 나라는 세계와 또 다른 나를 가진 타인이 하나로 섞여버리는 일치감 같은 거겠지요. 내가 푸른 하늘을 좋아하면 사랑하는 그 또는 그녀 역시 그 푸른 하늘에 녹아들길 바라고, 내가 너른 들녘에 누워 있노라면 그 곁에 역시 함께 그 또는 그녀가 누워 있길 바라는 마음, 사랑이란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함께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르느와르의 그림은 그림 속에서 스스로를 분해합니다. 뚜렷한 윤곽선이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그리고자 하는 포커스를 맞춘 대상이고, 어디서부터가 그 대상을 받쳐주는 배경인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같은 인상파 화가라지만, 마네의 그림은 그 윤곽선이 아주 분명해서 대상이 된 물체, 혹은 사람이 튀어나올 듯 강렬하게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하지만 르느와르 그림은 흐느적거리면서 스스로 분해된 모습입니다. 모호하게 처리된 윤곽선 사이로, 외부세계에서 오는 빛이 다 스며들어버린 느낌입니다.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안개 같은 대기가 대상을 함께 감싸도는 느낌, 르느와르 그림이 차분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요소이겠지요. 즉 푸른 들녘이나 바닷가에서, 내 몸이 그냥 내 몸으로서가 아니라 그 들녘과 그 바다의 비린 내음에 하나로 융화된 채, 나와 그 자연과의 경계를 잃어버리는 느낌 말입니다. 나는 주변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해체시키고 주변의 인상들은 나라는 존재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몸의 살갗이 그 팽팽함을 포기하고 외부세계에 허물어지듯 녹아버립니다. 마치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처럼 말입니다. 르느와르의 그림은 언제 보아도 따뜻하고 즐겁습니다. 화면을 구멍난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이유로 검은 색을 극도로 피한 탓인지, 어두운 부분조차 그는 짙은 푸른색으로 마감했습니 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어둠조차도 푸른 느낌으로 눈을 쉬게 하지요. 게다가 풍경화만 줄창 그려대는 기존의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흥에 겨운 카페의 선남선녀들의 순간적인 즐거 움을 포착하는 데 열을 올렸구요. 그의 누드 속에 나타나는 분홍빛 살결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즐거운 일, 나는 이미 내가 아니고, 너 또한 네가 아닌 채 서로 섞이는 일. 경계가 없는 해체된 내 몸 속으로 파고드는 빛. 너는 그 즐거움을 얼마나 알고 살아가느냐, 라구요. 나무그림 김영숙씨는 사이버주부대학(www.cyberjubu.com)에서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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