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두 작가가 외면하지 않은 삶의 밑바닥
70년대 두 작가가 외면하지 않은 삶의 밑바닥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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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생 작가 김종광의 소설엔 근래 우리문학이 잃어버린 흙의 정서가 있다. 이는 그의 동년배 작가들에게선 좀체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니, 그 희귀함이 경이로움으로까지 비쳐진다.『모내기 블루스』는 그의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데, 도회에서 다방이나 술집을 전전하던 아가씨가 농촌건달을 따라와 모내기 현장에서 벌이는 희화다.

타고난 입담을 가진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 그걸 능청스런 의뭉함으로 전달하는 풍자의 힘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이 소설은 요즘 작가들이 거의 쳐다보지 않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단의 소중한 자산에 값하고 남음이 있다. 이 속에는 세계경제니 혹은 국민경제니 하는 틀 속에서 국민 축에도 끼지 못한 채 묵정지에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울분이 담겨 있어서이다.

이렇게 무겁고 고통스런 내용을 희화로 처리한 데서 우리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지경에 처하나, 우여곡절의 모내기를 끝내고 그 자리에서 주인공 남녀가 부모가 함께 어울려 뽕짝과 블루스로 들판을 흥청거리게 만들어버린 데서 보이는 작가의 낙천적 현실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이에 대해선 그의 선배작가 성석제가『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농담 속에서 가슴 후비는 비극을 보여준 그 진지한 사유력을 배워야 한다.

1973년생 작가 이명랑의 연작소설『삼오식당』에 설정된 무대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영등포시장이다. 바로 이 시장통에서 과일장사, 밥장사, 야채장사, 양말장사, 생선장사, 커피장사 등 온갖 인생들이 펼치는 삶의 악다구니와 인정물태(人情物態)의 파노라마는 너무도 신랄하다. 사내들의 상습적인 음주와 폭력, 여편네들의 바람기와 푼수, 일찍 까져버리는 아이들의 비속어와 은어가 도처에 출몰하는 이 속되고 속되기 짝이 없는 난장에서 그러나 폭죽처럼 터져나오는 웃음을 보라. 절망의 밑바닥과 비루한 일상을 통과한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삶의 어쩔 수 없는 숭고함을 또한 보라.

거대자본의 대형 백화점이나 다국적기업의 초대형 할인마켓들이 마치 초강력 진공청소기처럼 소비자를 죄다 빨아버리는 가운데서 그 땀고랑내와 피눈물로 질척거리는 공간을 지켜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끝내 인간 본연의 사랑과 욕망을 펼쳐내는 사람들을 그들의 육두문자로 생생하게 묘파해낸 이 유쾌한 민중서사 역시 값지다.

그의 대선배 작가 김주영이『아리랑난장』에서 떠돌이 장사꾼을 주인공으로 삼아 방방곡곡의 장터를 돌아다니며 팔도의 먹거리와 팔도의 풍물과 팔도의 사투리를 생생하게 살려놓음과 동시에 그 승부의 세계에 뛰어든 사람들의 의리, 모사, 배반, 사랑을 장쾌한 서사적 드라마로 보여줬다면, 이명랑의 소설은 이의 창조적 축약판이다.

문화가 산업이니 상품으로 전락되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그래서 작가들마저 내남없이 독자들의 구미를 좇는 상품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또한 나무랄 일이 못된다. 요사이 로또복권 열풍에서 보듯 일확천금을 꿈꾸는 황금숭배욕과 톡 건드리기만 해도 용광로처럼 달아오르는 성욕만이 비등하는 사회에서 그들의 욕망에 가 닿지 않는 이 70년대생 두 작가는 그래서 일찌감치 상품이 되긴 글러버린 것 같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 문학은 아직도 가능한 것 아닌가. 작가가 시대적 진실을 탐구하고 삶과 사랑의 혁명을 예감해내는 등의 위의와 함께 우주적 영원의 숨결까지 호흡해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정전적(正典的)인 말은 그만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희노애락으로 울고 웃어야 할 작가가 상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어찌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외면하겠는가. 70년대생 두 건강한 작가는 우리 문학의 장래와 함께 읽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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