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광주가 마음의 고향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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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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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미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상담실장

낼모레면 설입니다.
저도 아줌마니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다려집니다.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도 보고 가족들도 볼 수 있으니까요. 선물로 뭘 사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나 이번 쉬는 날 어디가요? "
"네, 집에 가요. 엄마, 아빠 보러 가요."
"누나 나 이번 쉬는 날 광주가요."
"그럼 전화하세요. 저 일요일에 센터 나올 거예요. 우리 일요일에 만나서 놀아요."
"누나 꼭 나오세요."

얼마 전에 산업연수생기간이 다 끝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 로힘씨의 전화였습니다. 대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길로 들어 설 때 유난히 두려워하던 눈이 생각납니다. 좋은 사람 많이 있다고 하면서 광주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대구로 갔나 봅니다.

이제 스물네 살이 될 로힘씨는 눈이 크고 동그랗더니 역시나 겁이 많더군요.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왜 불법체류자가 되려고 하냐고 물어 보았더니 방글라데시에는 일을 할 곳이 없고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돈을 벌어야 식구들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한국에 올 때 돈이 많이 들었고 연수생을 하면서 그 돈은 이제야 다 갚았답니다. 그래도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어서 연수생 나올 때 사장님께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대구에 가서 일을 하던 로힘씨가 명절에 광주로 온다는 말을 듣고 쓸쓸하게 설을 보내게 될 이주노동자들이 걱정되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회사는 기숙사도 개방해주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해주는데, 어떤 회사들은 화재나 사고를 예방한다는 이유로 기숙사를 폐쇄하거나 명절 때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곳들도 있으니까요.

특별하게 음력설을 지내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이라 할지라도 한국사람들이 모두 가족을 보러 떠나면 그들도 얼마나 가족과 고향이 그립겠습니까? 우리만 즐겁고 신나게 놀 것이 아니라 먼 타국에 와있는 우리 이웃인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광주를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각자 자기의 나라로 돌아갔을 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곳이 아니라, 어려울 때 가서 일을 해 땀 흘린 만큼 보람을 얻었던 곳, 사람들이 좋아서 늘 그리운 곳, 고향 같은 곳, 한국 그리고 광주....

설이 지나면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강제 출국을 당합니다. 단속을 피하려다 다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용해서 공장 돌리게 해놓고서는 이제는 범법자로 몰아세워 강제로 출국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쫓아내면 그들은 아마도 한국이 있는 쪽으로 오줌도 안 누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크게는 한국제품 구매 거부 운동도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이주노동자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잘해준다면 그들도 한국과 광주를 마음의 고향이라 여기며 늘 그리워 할 것입니다.

/류승미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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