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그리는 그가 있어 우리 가슴은 시원하다
바람을 그리는 그가 있어 우리 가슴은 시원하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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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를 만나다-서양화가 한희원씨.

그를 찾아가는 날, 전날 내린 눈이 온 세상 가득 쌓여있다. 주차장 한켠,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한 작업실은 따스하다. 바람. 그곳에 들어갔을 때 나는 바람을 만났다. 바람소리와 함께... 바람과 함께 하는 나무들, 사람, 꽃... 바람을 맞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 쓸쓸한 그렇지만 따뜻한...

한희원(49)씨. 나무와 돌과 별을 그리는 화가라고 들었다. 글쟁이들이 좋아하는 화가라는 말과 함께. 그의 그림으로 글을 쓴 사람도 많단다. 그의 무엇이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가. 그림과 음악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듯, 글도 그렇겠다. 문학과 예술이 어디 다르겠나. 삶이 문학이고 예술이듯, 삶 자체가 문화인 것을.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눈이 선하다. 그리움이 가득한 듯, 먼곳을 바라보는 눈빛이 빛난다. '쓸쓸하네요'하는 나의 말에 '그리워서인가봐요' 한다. 무엇을 그는 그렇게 그리워하는가.


한희원 作 '푸른바람'/251×132㎝ /유화 /2002

바람부는 곳, 서있는 나무, 끝없이 이어진 길, 걷는 사람, 넘실거리는 파도, 굳건한 바위, 가느다란 불빛. 언뜻 삭막해 보일 듯 한데, 따뜻하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 눈마저 내리고... 추운 듯 주머니에 손 넣고 걷는 사람이 있는 풍경. 하지만 골목옆 창문에는 불이 켜 있다. 가난하지만 비참해 보이지 않는 것은 희망과 사랑이 있기 때문일까. 유년시절, 학교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곳에서 살았단다. 막내로 주위의 사랑을 받았을텐데, 그는 늘 쓸쓸했을까. 아마도 북이 고향인 아버지를 두어 마음속에 그리움이 가득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는 비교적 그림을 늦게 시작한 편이다. 문학을 꿈꾸었던 그는 학창시절에는 운동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 누나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한 그는 75학번으로 조선대 미대에 진학했다. 술과 그림만이 그의 대학기억일 정도로 그의 대학생활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민중예술이 전무하던 그 시절, 유신말 세상은 각박한데 예술은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했다. 고난받고 가난한 민중의 아픔을 외면한 예술환경에 그는 아쉬워했다.

졸업 후, 순천여상에 근무하게 되어 순천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는 민중의 삶으로 들어간다. '찾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장터전도 열고, 동네 청년을 대상으로 미술교육도 한 것. '장터전'에는 막걸리도 놓고, 판화도 찍어주며 잔치를 열었다. 미술이 소위 '있는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두가 미술이 될 수 있고, 생활 속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 민중미술을 위해 '목판화 연구회'를 만들어 판화운동을 했다.

여러 작품이 가능한 판화야말로 민중에게 다가가기에 더 없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그의 작품은 현실 참여적이면서도 정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가난하고 억압받은 민중의 모습이지만 격하지 않고, 분노할지라도 비참하지 않는, 민중미술이면서도 문학적인 작품들이었다. 분노와 울분을 삭인, 거르고 걸러 정제시킨 모습. 순천에서의 작품생활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90년, 광주상고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의 작품은 달라진다. 세계정세를 비롯한 사회적 상황도 달라지고 광주로 옮기면서 주변상황도 변했다. 몸으로 부대끼던 순천생활에서 내면적이고 정적인 상황에 놓여진 것. 낭만을 이야기하던 작가들을 다시 보게되고, 자신도 변화하게 되었다.


한희원 作 '바람을 따라 길을 걷다' /194×97.5㎝ /유화 /2002

내면적 풍경화. 암울한 상황에서 꽃을 그리는 것이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을 그리는 화가는 현실을 도피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화려한 풍경화가 아닌, 가슴속 연민을 가득 품은 모습들, 나무, 꽃, 바람, 별을 그렸다. 93년 첫 개인전에서 문학적이고 시적인 작품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풍경화의 새로운 분야로 인정받았다. 어린시절 문학에의 꿈이 그림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분명 서양화가다. 하지만 동양화가 같다. 그의 작품은 서양화이지만 동양화같고, 유화이지만 먹으로 그린 듯 하다. 그의 작품에는 여백과 여유와 여운이 있다. 유화로 어떻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독특한 화법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작가들이 영감을 받는가. 그가 그린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과 기억들이 나오는 것 같다.

그의 그림은 음악도 부른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보고 오카리나가 떠올랐다. 바람의 소리가 나는 오카리나. 바람같은 소년 한태주가 연주한 오카리나 소리. 황량한 듯 부는 바람에는 자유가 담겨있다. 거침없고 모두를 감싸는 바람처럼 그의 그림은 우리의 영혼을 달래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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