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여편네들의 유쾌한 외출
시장 여편네들의 유쾌한 외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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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랑. 『삼오식당』. 시공사. 2002.

겨울 무렵 농사꾼들에게 한 가지 낙이 있다면 그것은 걷이를 끝낸 후 관광버스 몇 대 빌려 유람을 떠나는 것이다. 으레 그런 유람은 춤으로 시작해서 춤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새벽녘의 설레임이 조금 가라앉고 불콰한 소주로 아침을 달래고 나서, 좌석 팔걸이에 허벅지를 무던히도 부딪히면서 이른바 관광버스춤으로 시작된 춤판은 저녁 이울 무렵 어느 소읍의 캬바레에서 그 절정을 맞이하는 법이다.

그 유희의 나락에 누가 누구 서방이니 누구 마누라니 하는 질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일년의 피로를 녹이면 그만이다. 그곳에 꼼사리 낀 동네 꼬마들에게(나를 포함해서) 사회자가 했던 한마디가 나는 잊혀지지 않는데, "니들도 빨리 커서, 어서 까져라!". 이런 말들이 농담으로 유쾌하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때가 있었던 것이다.

영등포 시장통 삼오식당의 둘째딸인 작가가 보여주는 시장의 모습은 그런 카니발이 일상화된 공간처럼 느껴져 반갑기 그지없다.
작가가 바라본 시장은 무능한 남편(남성)들의 상습적인 음주와 허랑방탕, 생활(돈)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인간적'이라는 시장의 오래된 상징을 무참히 무시해버리는 공간, 여편네(여성)들의 바람기와 푼수가 소문을 통해 피어오르는 데카메론의 향연이다.

이곳 여성들의 아랫도리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 이곳에서 성(性)과 쾌락은 금기가 아니다.이들의 유희는 주로 소문을 통해 번지는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소문이 바로 진실이 되어버리는 이곳의 질서를 대변하는 말쯤 될 것이다. 그 입방아의 화제에서 0번 상회 아줌마가 점원 황씨를 사랑한 것은, 황씨의 아이까지 낳은 것은 죄가 아니다.([까라마조프가의 딸들]) 모범적 가장 당진상회 할아버지가 입내 풀풀나고 드러운 금성장여관 아줌마와 연애를 하는 것은 금기가 아니다.([잔치])

그러나 이런 유쾌한 행각들에도 금기가 없을 수는 없으니 그것은 '생활'이다. 생활은 곧 돈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이다. 사랑을 하되 생활은 유지되어야 한다. 황씨를 사랑한 0번 상회 아줌마가 딸들에게 쫒겨난 이유는 불결함 때문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궁핍해진 그녀들의 주머니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가 돌아올 때 "가방 속에 하나 가득 지폐다발이 들어 있기만 하면, 우리들은 어쩌면 터럭 한올의 미움도, 증오도 없이 그녀를 다시 받아들일 것만 같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다. 생활(돈)은 절대 가치이며,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며 근대시장의 풍경이 또한 그러하다. 작가가 설정한 공간은 이런 시장의 오래된 낭만과 상징, 민중적 후각을 배제하면서부터 근대적 의미를 얻는다.

이들에게 입방아로 시작되는 흥분 외에 다른 하나의 즐거움이 또 있으니, 그것이 바로 배설이다. 좋은 말로 배설이지 오줌누고 똥싸는 일이 유쾌한 놀이가 되는 게 또 이곳이다. 소설 곳곳에서 아무데서나 바지 내리고 뜻뜻한 김를 모락모락 피워내더니, 급기야 [우리들의 화장실]에서는 배설의 향연을 벌이는 것이다.

공원 화장실에서의 집단적인 배설은, 소문과 생활(입)으로 인해 슬프거나 속에 쌓인 것들을 급기야 똥과 오줌(항문)으로 배출하는 축제다. (이 축제의 표면적인 이유야 똥할매가 화장실을 점거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 똥할매의 목에 걸린 금덩이들은 또 얼마나 눈이 부신가) 입으로 들어온 것들은 다시 나오게 되어있다. 입을 통한 소문, 불륜, 생활이 쌓여 묵직해지면 항문을 통해 내보내는 영등포 시장통 여자들의 몸이야말로 완전한 자웅동체가 아닐는지.

그러니 이들의 유쾌한 외출이 잦더라도, 뜬금없는 소문이 진실이 되고 화장실에 똥이 넘치더라도 욕을 하면 안된다.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다. 근대 시장의 모습이 그러하니, 시장에 내맡겨진 우리의 삶이 또한 그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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