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기개(지리산 구곡봉·황금능선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기개(지리산 구곡봉·황금능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1.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리산만큼이나 무거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없던' 고고한 선비 남명 조식(1501∼1572). 나는 지리산을 생각하면 남명선생이 떠오른다. 특히 덕천강을 따라 산청군 시천면으로 달리다보면 남명의 기개가 가슴에 와 닿는다.

남명 조식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도학자로서 퇴계 이황에 견줄 만큼 독특한 학풍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마와 후학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산청에서 가까운 지금의 합천군 삼가면 태생인 남명이 지리산 아래 산청군 시천면 덕산리에 자리잡은 것은 그의 나이 61세 때였다. 그리고 72세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지리산만을 바라보며 제자들에게 자신의 학문을 전수하는데 신명을 다 바쳤다.

남명은 학문을 익히는 것 못지 않게 실천을 중시했다. 이러한 남명의 정신은 제자들에게도 이어져 임진왜란 같은 나라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제자들은 의병활동에 직접 참여하여 실천적인 학문정신을 이어갔다.
거림골·중산리계곡·대원사계곡 등 크고 작은 지리산 남동쪽 골짜기의 물줄기들이 산모퉁이를 돌고, 바위를 넘어 규모를 점점 키우더니 이내 덕천강이 되었다. 남명은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절제되고 흔들리지 않는 기개를 지키고, 깊고 맑은 덕천강 줄기와 함께 하면서 삶의 유연함을 익히며 자신의 말년을 보냈던 것이다.

남명 조식의 혼 서린 덕천강


이런 남명의 혼이 바로 지리산 남동쪽인 산청군 시천면에 서려 있다. 덕천강변에 자리잡은, 남명이 후학을 가르쳤던 산천재와 남명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제자들이 세운 덕천서원이 바로 그곳이다.

덕산고등학교 옆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 산길로 접어든다. 겨울 산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나무들이다. 아무리 눈보라가 쳐도,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도 끄덕도 하지 않고 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 바로 나무이기 때문이다.
왁자지껄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침묵으로 변하여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릴 뿐 말이 없다. 뒤돌아보면 대원사계곡과 합류되는 덕천강이 바라보인다. 바로 우리가 출발했던 시천면 소재지인 덕산이다. S자로 구불구불 이어가는 황금능선을 바라보며 김용택의 시 <저 산 저 물>을 음미한다.

산도 한 삼십 년쯤 바라보아야 산이다 / 물도 한 삼십 년쯤 바라보아야 물이다 / 내가 누우면 산도 따라 나처럼 눕고 / 내가 걸어가면 물도 나처럼 흐른다 / 내가 잠이 들면 산도 자고 / 내가 깨어나면 물도 깨어난다 / 내가 / 세상이 적막해서 울면 / 저 산 저 물도 괴로워서 운다


자연과 하나된 삶. 산이 나고, 내가 산이 되는 경지. 바로 그것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산을 오르고 있는지 모른다. 구곡봉에 올라서니 병풍처럼 펼쳐지는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이 감동적이다. 천왕봉에서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멀리 반야봉까지 거대한 물결이 출렁이는 것처럼 살아 움직인다. 천왕봉에서 북동쪽으로도 중봉, 왕등재, 웅석봉까지의 주능선이 꿈틀거리며 달려간다. 주능선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산줄기들과 계곡들이 첩첩하다. 이처럼 지리산은 단순한 산의 개념을 넘어 거대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지리산을 바라보며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기개'를 배운다.

웅장한 산줄기와 잿빛 산비탈,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나목과 숲의 여백. 이들이 이룬 조화는 훌륭한 예술품이다.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산국(山國)을 거느리고 있는 천왕봉은 하얀 고깔을 쓰고서 구름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기를 반복한다. 모두가 신비로움이다.

중산리골짜기와 내원골을 양쪽으로 바라보며 황금능선을 걷는다. 능선에는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일정한 여백을 유지하면서 품위를 지키고 있다. 숲은 나무의 크기가 작았을 때는 여유가 없이 빽빽하다가도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일정한 여백과 공간이 유지된다.

회색의 나목 아래에는 푸른 산죽이 바탕색을 이루고 있다. 푸른 바탕에
잿빛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황금능선에는 사람 키 정도의 산죽이 온 산을 덮고 있다. 산죽은 조릿대라고도 하는데, 산죽을 쪼개어 조리를 만들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산죽밭 풍랑을 헤치며


오른쪽으로 내려 보이는 내원골에서는 내원사가 고요하다. 내원사는 깊고 맑은 계곡의 물소리마저 방해가 될 정도로 고요한 절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보물 제1113호)과 우리나라에서 조성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비로자나불상(보물 제1021호)의 자비로운 모습이 내원사에 역사의 무게를 실어준다.

천잠삼거리를 지나자 빼곡이 길만 보이는 산죽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날카로운 산죽잎은 얼굴을 때리고 산죽 줄기는 배낭을 붙잡는다. 지리산은 이처럼 호락호락 인간에게 그 길을 내주지 않는다. 마치 부처님께 삼천 배를 하고 나서 만나라는 큰스님의 불호령 같다. 계속해서 뺨을 치는 산죽잎은 우리에게 아예 고개를 숙이고 지나갈 것을 요구한다. 황금능선으로 불리는 써리봉에서 구곡봉에 이르는 능선은 이처럼 산죽이 많아 가을철 산죽잎이 누렇게 보일 때 그 색깔이 황금빛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죽밭을 지나는 길이 마치 바다에서 풍랑을 헤치고 가는 것 같다. 두 손으로 산죽을 헤치고 가는 소리는 파도를 헤치는 소리다. 인생 길도 결국 풍랑을 헤치고 가는 것일 터. 예고 없이 찾아온 풍랑은 갑자기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고, 처절한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풍랑을 어떻게 이겨내고, 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것인가에 있다.

국수봉에 올라서자 모처럼 전망이 드넓게 트인다. 지리산 주능선의 모습은 여전히 장중하고, 중산리가 어느새 왼쪽 바로 밑에 와 있다. 중산리계곡과 순두류계곡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순두류계곡에 있는 청소년수련원도 바라보인다. 자연 만큼 훌륭한 교사는 없다. 청소년들이 지리산과 같은 교사에게서 자연의 질서를 배우고,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철학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중산리주차장까지 내려와 천왕봉을 바라본다. 천하가 흔들려도 움직이지 않을 기세다. 저런 모습으로 남명은 살았고, 그 기개는 오늘까지도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덕산고등학교(50분) → 도솔암(1시간 30분) → 구곡봉(1시간 10분) → 천잠삼거리(1시간) → 국수봉(1시간) → 국수재(20분) → 순두류계곡(1시간) → 중산리주차장 (총소요시간 : 6시간 50분)
-. 제2코스 : 덕산고등학교(50분) → 도솔암(1시간 30분) → 구곡봉(1시간 10분) → 천잠삼거리(1시간) → 국수봉(10분) → 능선사거리(30분) → 중산리주차장 (총소요시간 : 5시간 10분)
*교통
-. 중부고속도로(대전-통영) 단성나들목을 빠져 나와 20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계속 달리면 시천면 소재지인 덕산리에 도착한다.
-. 진주에서 중산리행 버스가 하루 18회 운행된다. 중간에 덕산에서 내리면 된다.
(www.chosun.ac.kr/~gsjan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