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사잇길
전라도 말 사잇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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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말 사잇길-표준말의 무차별 공격(1) "어머니. 산얼 절라도 말로 무락하요?" 어느날 점심을 먹다가 내가 문득 물었다. "산얼 산이락하재 무락한다냐?" "산얼 기냥 산이락했다고라?" "그라먼 무락 했다냐?" "참말로 생각 안 나부요? 산얼 까끔이락 했쏘안." "이. 그랬다. 그랬어." "긍께. 나 애렀을 때만 해도 산이 아니고, 까끔으로 갈쿠나무랑, 끄렁이랑, 솔깽이랑 하로 댕김서 까끔에 나무하러 간다, 그래쏘안?"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신다. "근디 엄니. 빗지락얼 무락했는지 기억나시오? 마당빗지락 말고 방비지락얼 무라고 불렀 쏘?" "그란지. 무다라 그런거슬 물어보고 그라냐? 꼭 알어사 쓰냐? 이따가 늑 아부지 오먼 한분 물어보그라. 늑아부지넌 알랑가 몰겄다" "나가 몰라서 물어보는 거시 아니라, 엄니도 참말로 많이 잊어묵어부렀소이." "그라재. 함." "방비지락얼 해기빗지락이라고 불른 것언 알겄는디. 저닉에 서리 하는 거 있쏘안. 고거슬 무라고 부르긴 불렀는디. 생각이 안 난단 말이요." 방송매체의 영향이 크겠지만, 역대 정부의 표준말 정책은 대단히 성공을 거두어 말의 획일 화를 낳고 있다. 그래서 불과 20여년 전만 하여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토속어들이 이제는 전문가들의 연구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은 1974년. 교과서를 받은 나는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의 국어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온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나. 너. 우리. 그다음 페이지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이국의 언어를 본 듯한 생소함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내가 태어난 곳의 표기대로 하자면, 교과서의 말들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나. 니. 우덜. 우덜나라. 항국. 문제는 국어교과서만이 아니었다. 처음 사본 크레파스는 이상한 말들이 새겨져 있었다. 내 가 아는, 살색. 똥색. 흑색(=황토색). 밤색. 고동색. 하늘색. 풀색. 흐칸색. 뽈간색 같은 말은 어느 한 귀퉁이에도 붙어있지 않고, 저희들 마음대로 황색. 적색. 녹색. 청색이라고 붙여 놓 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커만색에는 얼토당토 않게 흑색(교육 받기 이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흑색이라 는 것은 흙의 색, 즉 황토색이었다.)이라는 글씨가 붙어있고, 뽈간색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 한 적색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 별별 생각을 다했다. 아 하 그래. 뽈간색은 뽈갱이를 뜻하고, 뽈갱이는 우리의 적이니까. 그렇지! 그래서 뽈간색을 ' 적색'이라고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색의 이름들 중에서, 그나마 내가 어림짐 작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흰색이라고 붙은 흐칸색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함께 크레파스를 샀던 친구에게, 우리 학교는 외진 학교라서, 여기 점방에는 이상한 데서 만든 물건만 폰(판)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동무도 어리둥절하기 는 마찬가지였는지. 나의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 이대흠 시인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1994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하여 현재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e-siin.com)에 들어가면 그의 보다 확장된 시세계는 물론 문화 전반에 관한 시야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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