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마음으로 보는 시각 장애인들 찾는 '아줌마 누나들'
사랑, 마음으로 보는 시각 장애인들 찾는 '아줌마 누나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시각장애인 삶터 연제동 '평화의 집' 봉사활동 10년째 봉사 '아줌마 누나' 5명 사람 그리운 시각장애인들에 한달에 두번씩 기쁨 선사 "이불빨래.점심준비가 전부지만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족이 됐죠"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지난달 24일 연제동 '평화의 집'에 상쾌한 휘파람 소리가 울려퍼진다. 평화의 집에 사는 10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다. "잘들 살았소?" "아이고! 누나 왔는가?" "뭐하고 지냈어?" "누나들 오길 목빠지게 기다렸제" 오늘은 '누나'들이 '평화의 집'을 방문하는 날이다. 10년째 '평화의 집' 봉사를 하고 있는 5명의 아줌마들은 이제 '누나' '동생'이라 부를만큼 '평화의 집' 식구들과 한 가족이 됐다. 그래서 한달에 두번씩 '누나'들이 이곳을 찾는 날이면 이곳 식구들은 '잔칫날'처럼 기쁘기만 하다. 오늘은 '누나'들이 평화의 집 식구들에게 선물을 하나 가져 왔다. 송윤순 씨가 아직 입을만한 옷들을 구해 한 보따리 가져온 것이다. "이 옷들 한번 입어봐. 아는 사람이 버리기 아깝다고 이렇게 많은 옷들을 줬어. 우리 식구들 생각나서 이렇게 가져왔제"라며 송씨는 방안에 두 손 가득 들고 왔던 옷보따를 풀어놓는다. 송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평화의 집 식구들은 '더듬더듬' 자신들에게 맞는 옷을 찾는다. "앗따! 그것은 여자 옷이여" "이거 이쁘겄는디. 그럼 누나 입으시오" 이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옷이 남자옷인지 여자옷인지, 또 무슨 색깔인지 전혀 볼 수 없지만 누나들의 마음을 아는 듯 옷들을 만져보고 또 만져본다. 그러는 사이 부엌에서는 '누나'들의 점심 준비가 한창이다. "여기 오는 날은 별미 먹는 날이예요"라며 평화의 집 식구들과 음식 해 먹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강향복씨는 오늘도 가방에서 파·미나리·달걀 등을 잔뜩 꺼내어 놓는다. 오늘의 메뉴는 '부침개'. 엊그제 비가 내려 서늘한 날씨에 무엇보다 그리워지는 '부침개'가 오늘의 별미다. 파를 꺼내 다듬기 시작할 즈음, 이곳의 '댓방' 심기섭 씨가 "나도 도와줄까?" 하며 부엌으로 들어온다. 손으로 더듬지 않아도 이제 부엌과 방을 들락거리는 것이 능숙한 심씨. 그는 자신도 시각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밝게 살며 다른 사람들을 챙기면서 '평화의 집'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 심씨가 일을 않고 가만히 있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 그가 파를 다듬어 주겠다고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는다. "기섭씨, 이거 다듬을 줄이나 알어?" 누님(?)의 면박에도 굴하지 않고 파를 한다발 쑥 집어 다듬기 시작하는 그 모습. 몇십년 부엌일을 한 누님들과 겨뤄도 뒤쳐지지 않을 솜씨다. '부침개'가 다 익었을 때쯤. 고소한 냄새를 맡은 평화의 집 식구들이 줄지어 부엌으로 들어온다. "아직 다 익지도 않았어. 왜 벌써 들어와"누나들의 잔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이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겨 자리를 잡는다. "괜찮아 빨리줘. 우리 누나들 솜씨 평가 좀 해봐야지" 그릇에 부침개를 담기가 무섭게 이들은 젓가락도 없이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하나씩 집어 '호호' 불며 먹기 시작한다. 그릇이 비워지는가 싶으면 또 담아주고 또 담아주고 이러기를 몇차례. 이 모습을 지켜보는 누나들은 자신이 배가 부른 듯 흐뭇해한다. 그러면서 계속 후라이팬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누나'들 중에서 가장 막내인 정정숙씨는 "우리 간 뒤에도 배고프면 마음껏 먹을만큼 해놓고 가야죠"라고 말하는 모습이 마치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 같다. '평화의 집'은 카톨릭 맹인 선교회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장동 '막달레나집'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삶터'다. 그래서인지 외로움이 싫어서, 사람이 그리워 이곳을 찾는 맹인들에게 '누나'들은 더없는 행복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들이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2년. '누나'들이 부녀회에서 이불 빨래 봉사 한번 해주러 '평화의 집' 문을 들어선 인연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안자 씨, 송윤순 씨, 송복자 씨, 강향복 씨, 정정숙 씨. 이들은 한 가정의 아내로써, 어머니로써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있어 평화의 집 식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작다. 한달에 5천원씩 내는 회비와 환경단체나 북구청 행사 등에서 음식을 만들어 판 돈으로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달에 두 번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을 터놓고 '따뜻함'을 나누는 것을 가장 특별하게 생각한다. 가정에서마저 소외받아 이곳을 찾은 평화의 집 식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해주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