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광주민심
흔들리는 광주민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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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거짓말만하고, 돌아가는 정치꼴이라곤 이제 신물이 나부요". "대통령은 쫌 과감하니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예를 들어, 뭐이냐. 세금포탈 같은 거 뭐, 수사허다 말어 불고". "그 분이 대통령이 되면 크게 달라질 줄 알았는데. 혼자 힘으론 안되는 모양이제..." 5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흥분도 잠시. 경제는 제2의 IMF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바닥을 기고 있고 정치 또한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쳐다보기도 싫다"고 할 만큼 민심은 흉흉하다. 지난 97년 12월 대선 당시, 새벽까지 가슴을 졸이다 '당선 확실'이란 TV자막과 함께 단숨에 도청앞 광장으로 달려가 "대통령 김대중"을 외쳤던 수만의 광주시민들이 정권출범 3주년을 맞는 지금, 그때의 감회는 커녕 안타까움을 넘어선 배신감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이룬 정부인데...". 국민의 정부 탄생에 지난 50여년의 설움과 한을 잊고 "이젠 뭔가 다르겠지"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광주시민들은 정쟁으로 날을 지새는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정권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좌절, 역차별이란 생각까지 겹치면서 '평생 동지'라는 끈끈한 연대의식을 접는 등 DJ정권의 토대가 바닥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도통합과 도청이전을 둘러싼 추진론자와 반대론자들간의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현실에 시민들은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못하면서 정부와 행정당국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시장상인과 택시기사, 주부 회사원 등 광주의 민초들이 표출하는 민심은 광주가 더 이상 DJ의 텃밭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광주말바우시장 상인 장영철씨(62)는 "전라도에서 대통령이 나왔다며 모두 기대들 많이 했는데 뭐하나 제대로 밀어부치는게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광주 남구 봉선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정순씨(34)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면 정말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서민들만 살기 더 힘들어진 세상이 됐다. 임금은 10년여째 그대로면서 물가는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오르고 있다는 뉴스 보도를 본 적이 있다"면서"이번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처음엔 아주 부풀려 모든 소가 광우병에 걸린 것처럼 이야기 하더니 나중에서야 확인 작업을 거쳐 이상이 없다고 발표하는 것은 서민들을 생각하는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거의 장사를 하지 못해 너무 속상했다"고 흥분했다. 민심이반은 이제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전남대 후문에서 노점상을 하는 김연자씨(여.40)는 "정치? 그런거 몰라요. 우린 그런거 몰라요. 대통령이 바뀌나 안바뀌나 돌아가는 것들은 똑 같던데...뭐. 똑 같애요"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또다른 노점상 김상희씨(43·용봉동)는 "우리가 뭘 알겠는가. 정치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놈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그런 정치인데.. 이제 정치에 뭘 바라고 싶지도 않다"하면서도 "예전에는 전라도 사람들은 김대중씨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말들이 쏙 들어갔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뽑아준 대통령인데 우리를 이렇게 배신할 수가 있는가. IMF가 끝났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속을 모르는 이야기다. IMF는 이제 시작이다". 김씨의 말속엔 깊숙이 분노감이 묻어있었다. 광주 광천동버스터미널에서 대기중이던 개인택시운전자 이만섭씨(54)는 "우리가 더 잘먹고 잘살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워낙 피해를 많이 보지 않았느냐. 그런데 막상 정권이 교체되니까 영남쪽 눈치보느라 호남은 여전히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른바 '역차별'을 강하게 성토했다. 이같은 배신감속의 광주정서는 그동안 DJ의 최대우군으로 평가받아온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에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를 정도로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함께 하는 광주시민행동'과 `반부패 국민연대 광주본부'등 광주지역 17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해말‘개혁을 외면하는 김대중 정권 각성하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가신정치를 청산하고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당정을 쇄신하는 한편 각종 개혁법안의 신속 처리와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선언은 정권교체후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낸 최초의 것이라는 점에서 전국적으로 적지않은 반향을 불러일의켰다. 또 지역 30여개 시민사회단체도 오는 23일 현정부 출범 3주년에 앞서 3대 개혁입법 실현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고통분담이 아닌 고통전담이 된 민생의 개혁, 부진한 교육.언론개혁의 박차, 지지부진한 정치개혁,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한 지방자치제도의 개혁 등을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다. 물론 이같은 광주시민들의 정서의 밑바탕에는 여전히 김대통령에 대한 강한 애정이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DJ의 오랜 동지인 강신석 목사(63.무진교회)는 "한국 현대사에 김대통령만한 정치인이 어디 있느냐. 여러 요인으로 개혁의 좋은 기회를 놓쳐 DJ개인에 대해 안타깝고 또 나라의 장래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시민 이성희씨(여.51)는 "사람들이 막 김대중씨 나쁘다고 해도... 북한 갔다온 것이랑 잘한 것도 있제"라며"그래도 기대해야제. 그나마 김대중이 된께 그라제"라고 일말의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 말바우 시장 상인은 "기대는 남아있제. 좀 흔들리지 말고,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과감하게 소시민들을 향해 열린 정치를 했으면 한다. 말 그대로 정말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가 되라" "정치가들이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거창한 사업보다는 공약을 지키려는 모습이 더 필요하다. 또, 실업문제나 노숙자 문제부터 관심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발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김대중대통령을 탄생시킨 그 날, 광주시민들은 벅찬 감회속에 새로운 미래의 희망을 떠올렸다. 그러나 2001년 2월. 국민의 정부출범 3주년을 맞는 광주는 이제 허무, 정체로부터 벗어나 21세기의 희망을 새롭게 조율해야하는 과제를 다시 안게 됐다.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이나 저항, 경제위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총체적인 불신이다. 나라현실에 대한 신뢰의 붕괴가 위기의 원인이란 지적이 많다. 김대중대통령은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신뢰를 회복하고 개혁을 성사시켜야한다. 그것은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진 광주가 끝내 희망을 버리지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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