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청의 가치-시민권력 공동체 나눔의 상징
1. 도청의 가치-시민권력 공동체 나눔의 상징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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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도청이 무엇인가. 전라남도 사무소인 도청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지역사회를 뜨거운 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는가. 그동안 도청이전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소모적 논란이 그것이다. '도청 이전투구'를 통해 지역사회가 얻은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도청에 대한 논란은 무한대로 해도 좋다. 하지만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다면 당장 중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녕 논란이 불가피하다면 이제는 정말 소모적이어서는 안된다. 생산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도청을 둘러싼 논란이 지역사회의 가치통합을 이루고 지역발전의 에너지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도청은 단순한 도청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청을 도청답게 만드는 것은 후세들의 몫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청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모두 도청을 바라볼 때 옷깃을 여미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 '도청정신'은 무엇인가. 우선 권력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80년 민주화의 봄에 전남대, 조선대 학생들은 왜 도청으로 향했는가. 당시 도청으로 가는 것은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것은 도청이야말로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단순한 외침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민족 민주화성회를 하는 것은..."으로 시작되는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의 생생한 육성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그것은 곧 경고였다. 권력이 권력답지 못할 때 도청에 반드시 다시 모일 것이라는 선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도청에 모였다. 진정한 권력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답은 '시민권력'이다. 피를 흘리며 쟁취했다는 점에서도 '시민권력'의 형성과정을 알려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도청은 그 '시민권력'의 본부이며 그 자체였다. 도청은 또 '시민권력'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보여줬다. 공동체와 나눔이다. 80년 항쟁의 전기간동안 광주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위기를 가장 인간다운 삶의 협동과 나눔으로 대처했다. 공동체와 나눔의 정신은 높은 도덕성과 성숙한 민주의식을 바탕으로 한때 총칼을 앞세운 정예군대마저도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까지도 보여줬다. 또한 공동체와 나눔의 정신이야말로 (시민)권력을 거의 완벽하게 운영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공식적인 치안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 시민 스스로 치안과 질서를 완벽하게 이룬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도청이 있었다. 도청이 없었던들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도청은 곧 권력이며 공동체와 나눔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도청을 단순히 도청으로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 하루빨리 도청을 도청답게 만들어야 한다. 저 80년이후 광주가 보통명사가 됐듯이 도청도 그렇기 때문이다. "나아가 나아가 도청을 향해, 출정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그날 이후 광주를 생각하며 전국의 의로운 투쟁을 시작할 때마다, 진군할 때마다 도청을 향해 가자고 했던 의미도 바로 그것이 아닌가. "새벽 4시가 지나면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도청의 시민군은 도청 전면과 측면에 2∼3명씩 1개조로 담장을 따라 배치되었고 도청안에는 1층부터 3층까지 유리창 옆에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여단 특공조는 4개조로 나뉘어 도청을 포위했다. 도청 뒷담을 뛰어넘어온 특공조가 맹렬히 총을 쏘아대자 곧이어 사방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특공조는 도청 내부로 돌격하여 각 방의 문을 걷어차면서 닥치는대로 총을 쏘았고 도청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총소리와 비명이 난무한 가운데 인기척이 나는 곳에에다는 무조건 총격을 가했다. 그야말로 '폭도소탕 작전', 바로 그것이었다"<5·18광주민중항쟁, 광주시5·18사료편찬위원회편> 지금 도청은 왠지 위압적이다. 경찰청과 함께 있어서 일까. 지금 도청에 과연 시민권력, 공동체, 나눔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누가 느끼는가. 혹시 도청 공무원들은 지금 자신들이 앉아있는 자리가 어느 이름모를 전사가 피를 토하며 전사했던 자리라는 것을 생각조차하고 있을까. 지금은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도청의 건물이지만 그속에 흐르는 붉은 핏자국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청은 지금, 보일락 말락한 항쟁탑하나 달랑 있을뿐 여느 행정관청과 다를바 없는 육중한 건물일 뿐이다. 역사책을 들고 가지 않는다면, 미리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도청은 오늘날 광주와 '광주'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5·18이 밥먹여주느냐", "5·18 좀 그만 팔아라"는 질책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가는 것도 목도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오늘, 도청의 가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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