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도청역사 끝나나
104년 도청역사 끝나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청은 과거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도청 앞 뜰에 서 있는 석등이 이를 말해준다.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5호인 이 재명석등은 원래 광주 남문안에 있던 대황사 유물로 전해지고 있으며 언제 옮겼는지 알 수 없으나 도청 앞 무덕전 앞마당 담장 안에 있었다. 1968년 금남로 확장공사로 종전에 있던 무덕전 건물이 개축되면서 현 위치로 옮겨졌다. 이 석등의 양식은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팔각석주 간석석등의 계열에 속한다. 이러한 양식의 예로는 국보 제44호 보림사 석등, 보물 제233호 무황사 석등 등이 있다. 이 석등의 조성시기는 고려초의 작품으로 11세기 전후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의 도청자리는 또 고려초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읍성의 남문안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 위치에 도청이 들어선 것은 대한제국시대인 1896년 8월4일(고종 33년) 23부재가 폐지되고, 종전 8도중 5개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13도제를 실시함에 따라 전라도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리되면서 부터다. 당시 고종이 전라남도의 관찰부를 광주군에 두고, 관찰사로 윤웅렬을 임명한 것. 현 건물 본관은 1925년에 2층 건물로, 민원실은 1930년에 지하 1층, 지상4층 건물로 신축되었다. 1992년에 도의회 건물이 들어서기까지 증축을 거듭,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부지면적은 5,801평(국유지 5,143평, 도유지 658평)으로 도시계획상 용도지역은 중심상업지역이며, 용도지구는 방화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도청 건물중에는 현재 민원실이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돼 있다. 이 건물은 1930년대 당시 도청 공무원이었으며 초대 한국건축사협회장을 역임한 김순하의 설계로 건립된 것이다. 지하1층 지상2층의 조적조 붉은 벽돌 건물이며 2층의 주공간은 창문이 상하로 나뉘어 있어 밖에서는 3층으로 보이는 아담한 건물이다. 길 옆의 출입구 상부에서 옥상까지 전면을 유리로 장식하고 그 좌우 모서리를 곡면으로 처리한 점과 원형창과 전면출입구 앞 계단 난간의 곡선 처리 등 당시 건물로는 혁신적인 기법이 도입됐다는 점에서 문화재로 지정됐다. 해방후 전남도 의사당으로 활용하다가 지금은 도청 민원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80년 5·18당시에는 계엄군에 맞선 최후 항전지로 유명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