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암정 향한 내 사랑과 배신
풍암정 향한 내 사랑과 배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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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는 바라보기 위해 짓는 집이 아니다. 반대로 그 안에 앉아서 바깥 경치를 내다보기 위한 집이다. 소쇄원 광풍각 방안에 앉아보면 저절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풍암정 만은 예외다. 어느 땐가 부터 나에게 풍암정은 그저 바라보는 집이 되어 버렸다. 내가 광주대학교로 가게되었다고 말했을 때 큰 형님의 첫마디는 "니 거 가서 우예 살래?"였다. 그만큼 전라도는 내게 먼 땅이었고 광주는 낯선 곳이었다. 아는 사람 한 사람이 없던터라 강의가 없는 날이면 자주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데가 바로 풍암정(楓岩亭)이었다. 충효동 가마터에서 포장 도로를 버리고 나면 비포장 길을 한참이나 오리걸음으로 올라와야 닿을 수 있었던 풍암정은 인적이 드문 곳이다.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물 가 바위에 걸터앉아 탁족(濯足)을 하기도 하고 정자 옆 너럭 바위 위에 드러누워 낮잠도 자고... 한나절을 고스란히 거기서 빈둥거려도 사람을 볼 수가 없어 풍암정을 온전히 전세낸 기분이었다. 풍암정을 일러주는 변변한 표지판도 하나 없었고 다행히 광주 관광 안내 팜프렛 같은데도 빠져있기 일쑤 여서 풍암정은 나의 숨겨진 휴식처요 이름 그대로 감추어진 비원(秘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지방신문에서 불길한 기사 하나를 읽었다. 광주시가 예산을 들여 풍암정 주변을 개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나의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소위 개발이 끝난 뒤 풍암정을 다시 찾은 나는 절망감에 몸서리쳤다. (문화재가 과연 개발 가능한지?) 소위 관에서 돈들여서 잘한다고 한 짓거리라는게 정자로 건너가는 입구에다 서양식 시민 공원을 만들어 예의 그 서양풍의 가로등을 세우고 보통 등나무 덩굴을 올리는 파고라(?)를 세우고 풍암정을 압도하는 현대식 화장실을 지은 것이다. 개발(?)된 후로는 좀체로 풍암정을 찾지 않는다. 어쩌다 가더라도 그 현대식 공원 끝에 서서 풍암정을 건너다 보고는 돌아온다. 그리고 그때 마다 에펠탑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파리의 문인, 모파상의 일화를 생각하고는 고소(苦笑)를 금치 못한다. 에펠탑을 끔직히도 싫어해 철거 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매일 점심 식사는 에펠 탑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하는 것으로 또 유명했다. 그렇게 싫어하면서 매일 같이 에펠탑을 찾아오는 이유를 묻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보여준 그의 답은 우문현답의 모범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내가 파리 시내에서 이 꼴불견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여기뿐이기 때문에" 내가 개발(?)된 그 꼴불견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국적 불명의 공원을 등지고 풍암정을 건너다 보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암정은 빼어난 정자다. 빼어난 정자였다. 판각되어 걸려있는 풍암정기(楓岩亭記)에는 바위 주변에 단풍 나무 백여그루가 있어서 "가을이면 서리 맞은 고운 단풍이 물 위에 비치어 물 빛이 단풍빛이고 단풍 빛이 물빛" 이라고 적혀있다. 풍암정이라는 이름은 거기서 유래한 듯한데 풍암은 이 정자의 주인인 김덕보(필자주 :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동생이다.)의 호이기도 하다. 정자가 먼저인지 호가 먼저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둘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느 때 누가 쓴 것인지 정자 옆 커다란 바위에는 풍암(楓岩.단풍바위)이라는 두 자가 멋있게 새겨져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구석에는 자그마한 방을 들였다. 풍암정사(楓岩精舍)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면 호남 사림들의 후손들 중에서 영재들을 골라서 가르쳤던 강학소이기도 했던 듯 하다. 여름날 비 온 후에 풍암정 마루에 앉아 계곡물이 바위 사이를 감돌아 물방울 튀기며 용솟음치는 장쾌한 모습을 보면서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더위는 어느 틈에 가시고 가슴이 밑바닥 까지 시원해진다. "무릉도원을 어찌 그림을 보고서야 알겠느뇨"라고 읊은 임억령(필자주 : 식영정의 주인)의 시가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있던 정자를 후대에 김 덕보가 중수하여 머문 것으로 보인다. 이곳저곳 정자를 순례하면서 얻은 노우 하우 하나. 여름에는 정자를 찾지 말지어다. 정자 마루에 앉아 합죽선으로 여름을 쫓거나 정자 앞 계류에 탁족이란 여름 정취로는 최고이련만 우리 시대의 정자의 여름에는 그런 풍류가 없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정자가 앉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여름에는 어김없이 그런 정자에는 수채물에 파리 꼬이듯 사람이 꼬인다. / 윗글은 dK 21 자유발언대에 올려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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