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심장 박동소리 들리세요?
문화의 심장 박동소리 들리세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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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부터 본지와 함께 한 광주·전남문화연대는 마치 하얀 백지 위에 크고 작은 점들을 찍어 그림을 완성하듯 "삶에서의 다양한 느낌, 생각들을 풀어내 문화의 모습을 하나 하나 완성해 나가겠다"며 문화난장의 문을 열었다.
"문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는 원칙을 내세웠던 이들. 백화제방, 문화칼론, 대안문화를 꿈꾸는 다양한 사람들의 고정란을 통해 문화난장은 2002년 무엇을 말했는지 정리해 보았다. -편집자주-


장흥 수몰문화제, 축제 새틀 마련

월드컵과 대선이 2002년을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광주·전남 문화연대 사람들 기억은 한 가운데는 '장흥 수몰문화제'가 자리하고 있다.
1997년부터 시작된 탐진댐 건설로 하루 아침 뜻하지 않게 고향을 등져야 했던 장흥 지역의 수몰민들의 아픈 삶의 흔적을 위로해 준 '수몰문화제'. 물에 잠길 장흥 유치면의 19개 마을 중 하나였던 덕산마을에서의 축제는 수몰민들의 넋을 기림과 동시에 다시는 이 땅에 수몰이 가져오는 공동체 사회의 붕괴와 민초들의 역사가 수장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장흥 젊은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장흥문화마당에서 기획, 광주전남문화연대가 함께 했지만 천 한 장 자르는 것까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수몰문화제는 특별한 축제임이 틀림 없었다. 40여일 동안 축제 준비위원들은 덕산마을에서 살다시피 했다. 날마다 마을 사람들과 술 마시고 얘기하며 일하고 놀며 축제를 준비했다. 장흥문화마당 회장인 문충선 씨는 "지역문화 활동의 관건은 분명 그 지역 사람들과의 진(眞)하고도 야(野)한 통정(通情)에 있다"며 이번 문화제는 고향에서 쫓겨나는 고통과 고향집을 팔아먹은 죄책으로 심란한 내면풍경을 지니게 된 마을사람과의 통정이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일이었다고 후기에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염려였을 뿐이다. 마을의 역사가 담긴 사진과 요강, 가마솥 등 골동품을 내놓고 손님을 맞이하던 주민들, 이미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까지 찾아와 복을 빌던 당산제, 오래전 잊혀졌던 여인들의 놀이 '중로보기' 재현 등은 덕산 마을사람들을 축제의 주인으로 끌여들였다. 축제의 무대만 있고 그 속에서 축제를 즐길 사람들이 없는 일반적인 축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잔치가 끝난 뒤 축제 준비위원들은 마을 사람들과 평가도 진행했다. 돈에 팔려가는 역사를 되돌려 놓기 위해 수몰문화제는 끝이 아닌 시작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자리였다. 그리고 이들은 "한 마을의 수몰의 역사를 그대로 수장 시키는 것이 아닌 박물관이 되었건 기억의 공간으로 이들을 다시 옮겨 주고 후대들에게 알려 주는 것까지가 임무"임을 여전히 기억하며 장흥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문화 없는 문화행사엔 '날'을 세운다

광주에서 문화와 관련한 토론회가 열리는 자리마다 문화연대 관계자들은 빠지지 않는다. '광주에선 문화에 대해 토론할 사람이 문화연대 밖에 없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문화연대가 광주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광주의 대표적 문화행사였던 2002광주비엔날레, 광주김치축제, 광주국제영화제에서도 이들의 역할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들은 밖에서 축제를 감시하지 않는다. 직접 축제를 즐기며 시민들의 눈높이로 행사를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비엔날레가 시작되기 전 '문화칼론'을 통해 지역축제로 거듭나는 국제행사이길 바랬던 필진들은 행사 기간에도 관람객들의 눈높이에서 안내시설이나 편의시설, 전시실 구도 등에 대해 조언했다. 또, 비엔날레에서 일하고 있는 문화연대 회원들도 필진으로 참여,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비엔날레를 조명하며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김치축제와 국제영화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치 속에 파묻혀 축제를 즐기고, 하루에 서너개의 영화를 보면서 문화연대 모니터링단은 감시 역할 또한 놓치지 않았다. 축제를 단순한 소비성 이벤트가 아닌 지역문화 환경을 바꾸는 촉매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축제의 계획 및 실행의 책임주체가 명확한지, 그 축제가 제대로 기획된 것인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인지, 지역 내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적 자원을 발굴, 활용하여 자생적인 문화콘텐츠를 개발하였는지, 예산은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문화적인 파급효과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평가과정이 진행됐다.

이같은 평가는 주최측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김치축제의 평가서는 광주시와 이벤트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계기로 문화연대는 조만간 김치축제 관련 토론회를 개최해 10년동안 끊임없이 지적됐던 문제들의 한계 극복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국제영화제도 관람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주최측이 손놓고 바라보다가 마치 경쟁이 붙은 듯 마지막날 급히 제작한 설문지를 돌려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등 '문화는 동사'임을 실감케 했다.

더불어 문화칼론과 백화제방을 통해 "광주국제영화제가 보여주기식 행사로 갈 것인지, 아니면 광주지역의 영상문화와 산업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으로 쓰일 것인지 두고 보겠다"며 감시의 역할도 항상 잊지 않고 있다.


사람, 자연 그리고 마음

한해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것은 양희연씨의 '오래된 미래', 문충선 씨의 '산골마을 이야기', 전고필씨의 '길 위의 희망', 이대흠씨의 '내가 사랑하는 세상' 등 필진들이 직접 발로 뛰며 취재했던 기사들이다.

백화제방과 문화칼론 등에서 문화연대가 날카로운 시각을 앞세웠다면 이들은 생활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호흡하는 문화를 보여줬다. 만날 사람이 있고, 마음이 움직이면 취재비 없이도 이들은 길을 떠난다. 양희연씨는 한 사람을 취재하기 위해 서너번 발길을 옮기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야 사람들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전고필씨와 이대흠씨 또한 많은 곳에 글을 연재하고 있지만 그들의 서술방식은 항상 다르다. 매번 바뀌는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글 쓰기 전 다시 한번 그곳에 들려 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돌아온다.

그런가 하면 문충선씨는 글에서도 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언제나 존칭어를 사용하며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레 꺼내는 그의 글에는 가식이 없다. 그래서 그가 이야기 하는 산골마을의 잔잔한 풍경은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 주곤 한다.

이처럼 항상 바삐 움직이며 문화의 심장 박동소리를 유지하는 이들 덕분에 독자들은 소위 고급 문화계층이라고 일컫는 소수가 아니라 시민들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탄생했던 문화연대의 의도를 피부로 느끼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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