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쓴 역사의 진실은 가릴 수 없다'
'피로 쓴 역사의 진실은 가릴 수 없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2.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0톤이 넘는 미군 장갑차 아래에 깔린 두 여중생들이 차가운 아스팔트에 흘렸던 피는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깡패국가 미국의 실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새긴 핏빛 진실은 다시 지난 14일 오후 전남도청 앞 시도민결의대회 참석자들이 혈서로 무명천에 새긴 '주권회복'이라는 네 글자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문호 노신은 "피로 쓴 진실은 가릴 수 없다"라고 했던가.

함평에서 왔다는 한 여중생이 무대에 올라왔다. 청바지에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잠바차림의 김영주양(16. 함평여중3)은, 스스로 '불량학생'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불량학생이 내뱉는 말들은 미국의 오만에 대한 분노와 함께 힘없는 작은 조국에 대한 질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다짐이 이어졌다. 김양은 느릿하면서도 똑부러진 말투로 올 초 동계올림픽 숏트랙 경기의 이른바 '금메달 강탈사건'을 먼저 꺼냈다.

'시도민주권회복 결의대회'에 앞서 진행된 문화행사에서 성조기가 찢기고 있다

"그 메달이 어떤 메달이었습니까. 정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선수촌에서 어렵게 고생해서 얻은 메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줄 메달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대한민국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갔습니다.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제게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나라였습니다. 너무 자랑스러워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처럼 하고픈 것도 많고 꿈도 많았던 대한민국의 두 친구가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도대체 이곳이 누구의 땅입니까. 이 나라가 주권있는 독립국가입니까. 아니면 미국의 식민지입니까. 그 속에 한없이 무능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김양은 이어 "이 순간 맥도날드엔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고, 코카콜라도 잘팔리고 있겠죠. 여기 올라와 보니 제가 입고 있는 옷 역시 한국브렌드가 아니더군요. 우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라며 미국에 대한 인식과 생활을 '바꾸자'고 강조했다.

특히 자신의 딸 세대엔 "제가 부끄러워했던 힘없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조국 대한민국이길 바란다"며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너희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전국동시 반미 촛불시위 확산
도청 광장에서도 '주권회복'결의대회
시민들 '반미인식' 달라지고 있다.


'주권회복 광주전남 시도민결의대회'에 참석한 3천여명의 시민학생들은 이날 여중생사망사건에 대한 미국의 진정한 사죄와 한미행정협정(SOFA)개정에 목소리를 모았다. 수천개의 촛불이 금남로 도청 앞 광장을 메웠고, 작은 촛불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금남로에 모여든 시민들의 가슴속 분노를 밝히고 있었다.
부모의 손을잡고 금남로에 나선 어린아이도 '반미'를 외친다.

특히 시도민 자유발언시간에 중학생들을 비롯해 대학생, 주부 들이 자신의 생활속에서 느껴왔던 미국에 대한 분노를 성토하자, 시민들은 이들의 발언에 공감대를 표시하며 함께 촛불을 흔들고, '아침이슬'등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주최측 추산 5천여명의 시도민들이 참석, 경찰측의 협조(?)속에 진행된 이날 반미집회는 여중생사망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민족자존심 회복'을 향해 있음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1945년 미군이 이땅에 진주한 이후 주한미군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했지만, 이번처럼 전 국민적으로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대규모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처음인 셈이다. 그것은 시민들의 마음속에 미국에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음이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2시에는 금남로 카톨릭센타 앞에서 천주교 및 불교도 500여명이 각각 시국미사와 불교도대회를 열어 두 여중생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모았고, 이후 도청앞 시도민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한편, 이날 촛불시위는 서울 시청앞 광장의 10만인파(주최측추산)를 비롯해 광주·부산·대구 등 전국 57개도시에서 30만의 시민들이 자발적인 참여아래 벌어졌으며, 여중생범대위측은 오는 21일에도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죄와 SOFA개정을 촉구하는 2차 전국동시다발 촛불시위를 연다는 계획이다.

광주대책위는 또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 천막농성을 오는 31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으며,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에서도 매일 저녁 촛불추모행사를 계속한다고 밝혔다.
어린 학생들까지 앞다퉈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주권회복'이라는 혈서를 쓰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