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도통합논의, 왜 하필 이 시점인가?
[기고]시·도통합논의, 왜 하필 이 시점인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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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일[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새 천년의 시작을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군사정권 시절 각종 차별로 낙후한 지역사회의 부흥을 위해 큰 비전을 갖고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할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 지역사회 일부에서 일기 시작한 도청이전 백지화와 시·도 통합 논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최근 정동채 새천년 민주당 광주광역시지부장의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도청이전의 중단 요구, 고재유 광주광역시장의 이전과는 다른 전향적인 의사표명, 그리고 허경만 전라남도 지사의 기존 입장 고수로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으로 빠져들어 더욱 염려된다.

(특히 이 같은 논란이 지난해 가을부터 중앙정부와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서 시도된 부단체장의 국가직전환과 단체장 임명제로 환원을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반시대적, 반자치적 발상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자아낸다.)

필자는 전남도의회에서 1999년 6월 날치기(?)로 통과된 도청이전 문제가 법적으로는 해결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미해결 상태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여 왔다. 왜냐하면 민주사회란 주권재민자인 국민(주민)이 중요 정책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아울러 도청이전에 드는 천문학적 경비부담을 중앙정부가 쉽게 동의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1993년 김영삼 전대통령의 5.18 특별담화로 시작된 도청이전 논의는 도의회의 방관적 저항으로 지지부진하다가, 1995년 지사 선거 공약에서 시도 통합을 내건 허경만 후보가 당선됨으로서 시도통합 논의로 전환되었다. 허지사의 시도 통합노력은 당시 송언종광주광역시장의 방관적 태도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1998년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속에 전격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법적 종결이 이뤄진지 1년반만에 또다시 시·도 통합논의가 재연됨으로서 지역사회는 끝없는 소모전을 경험하고 있다. 도청이전 논의는 1993년 김영삼 전대통령의 5.18 특별담화로부터 비롯된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도청이전과 5.18기념공원화가 지역민의 의견을 얼마나 수렴한 가운데 결정되었던가를 우리는 지금이라도 냉철하게 재음미하여야 한다.

5.18 기념사업이라는 명목하에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도청이전 발표로 인하여 우리 지역사회가 겪은 갈등과 분열상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광주·전남의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앙정치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고 좋은 지역사회 만들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비생산적인 소모전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퇴보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둘 때 오늘의 시도통합과 도청이전 중단 논의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시도 통합논의는 지난해 연말부터 불기 시작한 일부 중앙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중앙행정관료의 향수어린 과거로의 회귀인 반자치적 반시대적 발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중앙정부가 중앙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기 위한 입법적인 조치를 하면서까지 '지방화'를 목소리 높여 주창하고 있지만, 지방화의 구체적인 표현인 실질적인 분권화에는 매우 인색한 중앙의 발상에 왜 지역사회가 편승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도청이전과 시·도 통합문제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엄연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시·도 통합 재론의 주요 배경인 광주광역시의 도심공동화 문제는 도청이전 결정 이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미 유기체로서의 '도시'의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는 도시의 성장과 쇠퇴라는 도시 발전사에 있어서의 구시가지 공동화 문제이며 단지 광주만의 문제는 아니라 점이다.

셋째, 2년 전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도의회 의원을 중심으로 도청이전 문제를 결사적으로 저지하고자 했을 때, 현재 도청이전의 부당성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일부 지도급 인사들은 당시 어떠한 입장을 취하였던가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2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지역사회의 리더쉽이기에, 정동채 지부장이 제기하고 있는 바와 같은 광주의 난맥상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넷째로, 시도 통합문제는 광주·전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광역시 제도의 존폐에 직결되는 문제로서, 우리 지역과는 다른 입장에서 기존 시의 광역시에로의 승격(?) 문제로 지역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지역의 주요 현안이 되고 있는 국가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앙정부적 차원에서는 현재 광역시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재검토를 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광주·전남만의 통합은 정치적, 법률적 장애요인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이웃 일본에서와 같은 지정시(指定市), 중핵시(中核市), 특별시(特例市), (보통)시(市) 처럼 도시의 규모와 능력에 따라 차등 취급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약한 상태에서의 시도 통합논의는 비현실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행정구역 개편문제는 행정계층이나 선거구와 깊은 관계를 가진 매우 민감한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가 해방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그 성패와 관계없이 모든 일제 식민지 체제에 대한 재정비 노력을 하였지만, 유독 행정구역만은 해방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근원적인 재편을 하지 못하고 땜질식의 대증요법만을 반복하여 왔었다.

그 결과 우리 나라 행정구역은 21세기 세계와, 정보화, 지방화 시대에 맞지 않는 化石化된 구시대적 유물이 되고 있어, 근원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국가적 긴급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1926년에 군청을, 그리고 북한이 1952년에 면사무소를 폐지했다는 것만 보아도, 우리 나라 행정구역 정비의 낙후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도통합에 수반되는 행정구역 정비문제는 정치인들의 이해득실과 선거전략이라는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는 국가운영의 기본단위로서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민편의 제공, 그리고 민족통일이라는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국가적 당면과제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 지역사회 일부에서 일고 있는 시도 통합논의가 갈등과 반목 속에서 더 이상 지역사회 발전의 암적 존재로 전락되지 않도록 하는 지역사회 리더들의 자기성찰과 리더쉽이 절대적으로 요청됨과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의 행정구역의 재획정(再劃定)을 통한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이 재구성되도록 중앙정부에 압력을 넣는 일이 우선이다. 이것이 분권과 자치로 가는 길이며 소모적인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길이다.

/오재일[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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