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나무하며 겨울나기
땔나무하며 겨울나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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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오줌 누러 일어난 하늘이가 방문을 열더니 큰 소리로 야단입니다. "눈이 엄청나게 왔네." 소리도 없이 밤새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문득 걱정이 앞섭니다. 지난 해 겨울 마을로 들어서는 문턱거리가 응달이라 한 번 땅바닥이 얼면 녹지 않아 차가 미끄러진 기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조금 있으니 하늘이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한 시간 정도 늦게 학교에 와도 되니 걸어오라는 말씀인 모양입니다. 전화를 끊은 하늘이는 아빠랑 함께 걸어가자고 합니다. "야! 다 큰놈이... 혼자 걸어가라." 슬쩍 얼러 보지만 하늘이는 꼭 같이 걸어가야 한다고 떼를 씁니다. 눈길이라 천천히 걸어가자면 한 시간 이상 걸릴테니 빨리 나서야 할텐데 하늘이는 이 차가운 아침에 머리를 감으며 늦장을 부립니다. 지난 밤 바람이 사납게 불어 밤늦게 아궁이에 장작 몇 개를 더 던져 주었는데 무쇠솥도 차가운 바람을 어쩌지 못하고 물이 미지근합니다.

아침 찬 기운에 머리 감은 하늘이가 감기 걸리기 십상이라 가는 데까지 차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다행히 문턱거리를 지나 저수지 넓은 길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수지에서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상당한 내리막이라 저수지 길에 차를 세워두고 아들과 나란히 이십 분 정도 눈길을 걸어 학교에 갔습니다.

저녘이면 집집의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로 해서 한치의 겨울밤은 따뜻하게 깊어 갑니다.(자료사진)

집으로 올라오는 길 사방에 널린 땔감을 주워 트럭 짐칸에 던져 싣습니다. 한치로 올라가는 길은 지금 공사중이라 여기저기 나무무더기가 쌓여있습니다. 큰한치 작은한치 합해서 열 다섯 가구 정도 사는데 이렇게 넗은 길을 낼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의 요구로 탐진댐 건설의 보상 차원에서 이런 산골까지 산을 깎아 길을 뻥뻥 내는 모양입니다. 집과 마을과 산을 통째로 흔적도 없이 깔아 뭉개버리는 일이 댐 건설이니 이까짓 산길을 뻥 뚫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닐테지요.

그래서 불을 때고 사는 나에게는 땔감천지 입니다. 지금까지는 댐 공사로 처참하게 부셔버린 수몰마을 집들의 기둥과 서까래와 도리와 보를 주어다 땔감으로 사용했는데 이제는 그 동안 정들었던 한치로 올라가는 길가에 서있던 나무들을 가져다 땔감으로 해야할 모양입니다. 이 무슨 슬픈 일인가요.

지난 늦가을에 불쏘시개로 쓸 솔가리를 갈퀴로 긁어모아 해 놨습니다. 두 세푸대 정도면 올 겨울나기에는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얼마 전 나 없는 사이에 온 후배가 추웠는지 그냥 한 순간에 꼬실라 버렸습니다. 솔가지 삭정이가 금방 옮겨 타지 않아서 솔가리만 태운 것입니다. 원래 삭정이는 큰 가지에 가려서 햇볕을 보지 못해 잎이 떨어지고 말라버린 나뭇가지인데 내가 해온 삭정이는 길 공사로 잘린 생소나무에서 잘라온 것이라 잘 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둥이나 서까래는 잘라서 장작을 패거나 두께가 적당한 것은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솔가리와 삭정이, 그리고 장작이 어우러진 삼박자가 맞아야 쉽게 불을 땔 수 있습니다. 솔가리에 불을 지펴 그 위에 삭정이를 얹어 불이 알맞게 솟아오르면 거기다 장작을 던져 넣으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같은 한겨울에는 은근하게 타라고 장작불 위에 덜 마른 장작을 한 두 개 던져줍니다. 그러면 밤늦게까지 방 구들을 천천히 달굽니다.

우리 마을에는 일 곱 집이 사는 데 두 집은 전기 보일러를 사용하고 다섯 집이 나무로 불을 땝니다. 그런데 다섯 집 가운데 동네 꼭대기에서 혼자 사시는 팔십 넘은 나주할머니네 나뭇단이 제일 튼실합니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놓아준 기름보일러를 마다하고 손수 나무를 해서 불을 지핍니다. 저녘이면 집집의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로 해서 한치의 겨울밤은 따뜻하게 깊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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