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시민운동 '한 일 있냐' 물으면 '억울하다'
20년 시민운동 '한 일 있냐' 물으면 '억울하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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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용 광주YMCA 사무총장 *세계 시민운동 체험하러 해외로 연수 간다 *20년 시민운동-뭘 했냐고 물으면 즉답 안나온다. 그러나 한 일 있냐고 반문하면 '억울하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한국의 비정부기구(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운동을 "시민의 삶과 사회보장은 물론 시민의 문화를 위협하는 정치적 세력의 출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NGO의 정치개입을 21세기의 유일한 희망이라고도 표현했다. 시민단체가 우선 국내 사회문제에 개입하고 나아가 국제적 차원의 이슈들로 확대함으로써 진정한 국제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20여년 시민운동가로 활동해 온 정찬용 광주YMCA 사무총장이 새 천년의 원년에 광주 시민운동의 새 틀을 짜보겠다는 다짐으로 새로운 배움길을 작정하고 다음달 말 해외연수를 떠난다. 정총장의 행보가 부르디외가 표현한 그런 단계를 향한 준비의 시작일까. 외국 시민운동 탐방에 나서는 그를 만나 그가 지내온 시민운동 행보를 더듬으면서 앞으로 펼쳐 낼 시민운동의 새 틀에 관한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 -안식년을 맞아 외국으로 떠나신다면 보통 휴양차 여행을 생각하는데요. "안식년은 아닙니다. 시민운동가로서, 외국 시민운동을 경험하면서 나 자신을 충전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해외연수를 자청했고 유럽, 미주, 아시아 아프리카지역을 각각 3개월씩 돌면서 세계의 시민운동, 그리고 YMCA 활동을 살필 것입니다." -그래서 광주에서 시민운동가 활동을 잠시 접는다는 얘기도 나오면서 그 이면을 궁금해하는 반응도 분분합니다. "분명히 사무총장 신분으로 해외 출장가는 겁니다. 광주에서 시민운동에 몸 담은지 8년하고도 절반이 흘렀습니다. 시민의 몫은 시민단체가 감당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 시민단체는 그 역할이 미흡합니다. 특히 광주는 더 열악합니다. 사회란 시장과 정부와 시민 3자가 주축이 되어 맞물려 가야 합니다. 시민단체 일이란 게 세상의 요구를 듣 고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요구가 자연 많아지면서 반발 또한 늘어납니다. 시민운동의 범주가 점차 확장되는 거죠. 그들의 요구를 나 혼자 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운동 한답시고 책임 질 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신이 없어집니다. 일과 시간에 쫓기다보니 내 자신이 자꾸 퇴보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자기 계발 차원에서, 외국 사례를 통해 안목을 넓히고자 스스로 만들어낸 연수입니다." 한국의, 광주의 시민운동이 거듭나기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작업을 자신이 해 보기 위해 휴직의 형태를 빌렸지만 3개월마다 한번씩 광주에 들어와 중간중간 1개월 정도 사무총장직을 수행한다.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결코 편한 자리만은 아닌가. 해외연수도 홀가분하게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문에 안식년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안식년이란 원래 기독교에서 6일 일하고 하루 휴식한다는 뜻에서 시작된 안식일에서 비롯된다. 이런 형식은 농경사회에서 시작된 것으로 지금 산업화시대에 사람들은 휴일도 없이 일하다보니 이를 지키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기독교단체가 7년 일하고 1년 쉰다는 안식년 제도를 두게 된다. 외국 시민운동의 역사를 직접 보고, 현지 시민과 호흡하면서 정부기구(GO:Government Organization)와 NGO의 갈등은 있는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소하는가. NGO가 GO를 어떻게 견제하고 비판하는가를 통해 우리 NGO의 미래 비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또 영리조직(PO:Profit Organization)과 비영리조직(NPO:Non-Profit Organization)간의 관계도 짚어볼 계획이다. 세계의 시민운동을 접하고 광주에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4월2일부터 NGO의 세계본부가 있는 스위스를 시작으로,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를 돌며 그린피스, 내쇼날 트러스트 운동 등 유럽 시민운동과 YMCA 활동을 3개월 동안 살핀다. 귀국해 1개월 정도 현업에 복귀한 뒤 북미에서 중남미까지 미주지역 3개월 스케줄이 잡혀있다. 그는 특히 브라질의 꾸리찌바라는 도시에 관심을 갖는다. 지구에서 환경적 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 꿈의 도시로 통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1개월 머물다가 아시아, 아프리카로 떠난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쪽은 시민운동이라고 부르기 아직 미흡한 지역이지만 그래서 보아둘 것이 더 많으리라는 기대도 있다. -해외연수를 떠나는 의미와 부합시켜 정찬용 개인의 시민운동 역사가 궁금합니다. "1970년대 후반 경남 거창고등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고 있을 당시는 참 살벌한 시국이었습니다.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흔히 쓰는 말로 '카더라' 방송이 무성한 때입니다. 거창에 사는 건강한 지식인 30명이 모여 건강한 시민의식 갖기 운동을 펼쳐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것이 거창YMCA가 태동한 동기다. 그들이 거창YMCA 창립을 주도하면서 그는 총무를 맡는다. 그렇게 해서 거창 시민운동이 힘을 타지만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도 빵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당시 거창에서 총무는 자원봉사였다. 광주YMCA에서 손짓을 해온다. 그것도 고향에서의 손짓이라 그를 더 강하게 유혹했다. 그때가 1992년. 그는 당시를 광주는 경제적으로 침체된데다 정신적으로는 피해의식에 젖어있었다고 회고한다. 사람들의 사고가 양분법적인 강한 흑백논리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때맞춰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전투적인 사고구조가 조금은 이완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YMCA라는 시민운동이 시민들에게 녹아드는 것을 그는 확인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파트하자보수 운동을 꼽는다. "1993년 시민중계실을 개설했는데 시민들의 민원피해 접수 1위가 아파트 하자신고였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광주시의회에 아파트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하고 결국에는 건설부가 아파트하자보수법령을 제정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보게 됐고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를 확신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시민운동가의 역할이 발전되고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도 맡으셨습니다. 시민협의 성격과 역할은 무엇입니까. "광주YMCA는 시정지기단, 구정지기단, 시민권익 변호인단, 십대의 전화 개설 등의 후속사업에서 그래도 나름대로 역할을 했고,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덩치가 커지고 Y 혼자 감당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다른 시민단체도 힘을 합하면 더 큰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구상했습니다. 또 각 시민단체의 영역이 중복되는 부분을 교차시켜 업무를 분담하면 통합된 조직체에서 효율적인 시민운동을 할 수 있고 개별 시민단체의 자질도 향상된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1998년 12월에 협의회가 결성되고 상임대표를 맡았다. 그는 지난 23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대표직을 물러났다. 해외연수도 떠나야 하지만 이젠 바톤을 물려야 할 때도 됐다고 생각해서다. -거창에서부터 계산하면 시민운동에 참여하신 게 20년 가까이 됩니다. 고충도 많았으리라 생각 드는데요. "뭐 했냐고 물으면 뭐 했다고 한마디로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했다고 하기에는 (뭐 한 일 있냐고 반문한다면) 억울합니다.(웃음)" 사회는 물론이고 시민 각자가 무책임한 부분이 많다고 덧붙인다. 예를 들어 전남도청 이전문제가 제기되면 시민단체는 뭐하고 가만히 있느냐고 질책한다. 반면 문제 제기하면 네가 무슨 권한으로 나서냐고 따진다. 지하철 건설 공사 부분도 마찬가지란다. 한마디로 성가신 짐은 시민단체에 던져놓고 무임승차하려고 한달까. -항간에 광주YMCA가 모든 사업을 독식한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도 있다고 합디다. (단호하게)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내가(광주YMCA가) 챙기면서(챙겼다고 표현하니까 수용함) 양적으로 성장한 것 인정합니다. 인정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양적인 성장만큼 질적인 승화가 아직 덜 된 것에서 그런 반응들이 나온다고 봅니다. 좀더 지켜봐 주십시오."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 지난 5년동안 내부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해온 결과가 '광주Y 비전2020'으로 제시되고 있다. 광주YMCA 100주년을 향한 목표를 설정하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왜 그러한 반응들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비껴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다른 단체들이 서운한 부분도 있을 줄 압니다. Y는 금남로회관이 노른자위입니다. 이 회관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사업이나 세 확장에 기여하는 바가 컸지요. 믿고 맡겨진다는 겁니다. 광산지회 개설하는데 10억원, 서구문화센터도 2천5백평이라는 부지를 서구청으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청소년상담실 운영 등 다른 시청 위탁사업도 적지않게 했습니다. 그런 것이 '독식한다'라는 반응들로 모아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맡겨졌고 맡아서 한 것 뿐입니다." 지금도 각 구청에서 위탁사업 주문이 들어온다. 맡아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할 것만 한다고 강조한다. '독식' 운운하는 소리에 대해서는 청소년수련원은 살레지오수녀원에 맡겼고, 북구청소년수련관도 거부했으며 북구 일곡도서관, 첨단의 복지관도 위탁 운영주문이 해당 구청으로부터 먼저 왔지만 거부했다고 말한다. 도서관, 복지관은 Y의 전공분야(?)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내친 김에 직설적으로)심지어 정총장이 개인적으로 몫을 챙기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있는데… "그런 눈초리도 압니다. 사무총장이면서 시민협 상임대표를 맡은 것이 오버랩되어 나온 반응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할 수도 있지요. 상임대표가 되면서 언론에 부상한 것 또한 사실입 니다. 그때마다 항상 사무총장 직함이 따라 붙습니다. 이게 Y만 부상하고 비대해지는 것으로 오인되고 있을 겁니다. 일을 하다보면 반드시 말도 무성하지요." 그래서 그는 '앞으로 일은 늘리기보다 우리에게 알맞는 일만 선택해서 하자'라고, Y 내부적으로 '비전2020'의 목적과 사업에서 이미 정리했다고 다시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저희 '시민의 소리'가 태동했습니다.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이 시민의 목소리를 함께 내 주는데 힘을 얻고 출발했습니다. 이제 시민협 대표직은 떠나셨지만 개인 회원자격 으로 소리를 내 주십시오. "또 신문이냐는 반응이 당연히 나오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단법인 '광주시민의 소리' 이사로서 걱정도 많이 합니다. '또 하나의 신문'으로 전락하고 말 것인지, 지금까 지와는 다른 신문으로 살아날 것인지가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언론이 소유주 취향에 따라 언론 본연의 보도 방향과 내용에 제약받아 왔던 그런 성역을 깨뜨 리는 신문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면 하는 바램입니다. 물론 저희 시민단체도, 그리고 시민도 자기 의견을 정당하게 표출하려면 '시민의 소리'에 발기인으로, 또 시민기자로 적극 동참하여 바른 소리를 전달하려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정찬용은?◇ -1951년 전남 영암군 신북면 출생 -1969년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1974년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기소.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15년 징역형 -1975년 2월 광주교도소 복역 중 대통령 형 집행정지로 출감. 경남 거창고교 교사 부임 -1982년 경남 거창YMCA 총무 취임 -1992년 광주YMCA 간사 부임 -1992년 청소년상담실, 10대의 전화 개설 운영 -1993년 아파트하자보수운동 전개/건설부 '아파트하자보수법' 제정 -1994년 광주YMCA 하남지회 개설 -1997년 외산담배추방운동본부 본부장 활동 -1998년 광주YMCA 사무총장 취임.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1999년 광주비엔날레 이사. 광주시민협 주최 광주비엔날레 운영 관련 공청회 개최, 광주비엔날레를 민관협동체제로 전환. -2000년 광주시민협 4·13총선 낙천 낙선운동 전개. 스크린경마장 설치 반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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