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떼와 청글
철새떼와 청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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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철이 아님에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철새떼들도 서글픈데, <청글>의 위기 소식은 더욱 서글프다. 고려대 앞 <장백서림>이 빈사상태에 있다가 뜻있는 이들의 연대로 회생했다는 소식을 들은지 몇 년이 흘렀는데, 이제 우리 지역의 <청년글방>이 그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그맣고 외진 곳에 있지만 그저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활동을 통해 우리 지역의 청년과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던 문화공간이 그 흔한 교재나 참고서를 파는 상술도 없어서인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책방도 무한경쟁적 시장경제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이긴 하지만, 광주·전남의 대표적인 대학 주변에서 약 15년 간을 청년들의 벗으로 살아온 삶이 우리들의 무관심으로 그저 몇몇 사람들의 추억거리로 사라지게 되었다. 반면에 자고 나면 새로 생기는 궁전같은 모텔들, 유흥주점들이 이 지역의 문화를 채워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서글픔을 일으킨다. 밤에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오다 보면 비아 첨단지구에 이르러 휘황찬란한 불야성이 밤하늘에 수놓고 있는데 이것이 다름아닌 최첨단 모텔군들이라는 사실을 필자도 한참 후에 알았다. 이것이 예향, 민주화의 성지의 문화적 수준을 나타낸다고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모텔은 줄서는데 문화공간은 빈사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시·도의 행정·정치력이 없어서일까? 그래서 그걸 키우기 위해 상무지구에 초대형, 최첨단 시청을 짓고있는 것일까? 요즈음은 각 구마다 소위 <문화의 집> 하나 없는 곳이 없다. 그런데 왜 동네 책방들, 좀 의미있는 문화사업을 하는 단체들은 월세 하나 제대로 못내고 허덕대고 있는 것일까? 틈만 나면 권력에 어떻게든 줄을 서려는 정치인 아닌 정치꾼들, 그들은 문화를 아예 모르거나 문화가 '삶의 양식'이라는 기본적 사실도 모른다. 그들의 '문화'는 그저 몇 개의 전시관이나 공연장 건물 속에만 들어 있을 뿐이다. 그들도 왕년에 운동 좀 했네 하고 그걸 가지고 수십년 우려 먹으면서 어떻게든 출세하려고만 했지 진정 이 지역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에는 도통 무관심하거나 무식하다. 이런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고 장관을 만들어 봐야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우리는 선거철만 되면 매번 속는 것일까? 선거에 이겨도 우리는 퇴보할 수 있고 선거에 져도 우리는 진보할 수 있다.(진중권)

문화는 공동체, 공동사회를 만드는 첩경이다. 문화가 없는 공동체를 우리는 '이익사회'라 부른다. 오로지 개인들의 이해관계로만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이익사회는 진정한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끝없는 경쟁으로 날카로워지고 피곤해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사회를 만들어낼 뿐이다. 우리가 이 사회의 소속이라는 소속감은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인데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가? '잘사는 광주·전남'을 수도 없이 외쳐대는 정치를 쳐다 볼 것이 아니라 내가 타자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내가 타자와 어떤 문화를 공유하고 살아가는지를 살펴보자.

'청글'은 우리 공동체의 자화상


<청글>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우리 공동체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우리의 공간이 또 한번 닫혀지는 안타까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내가 타자와 공동체 의식으로 만나는 그런 공간이 점점 줄어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모든 타자는 나의 적이고 내가 어떻게든 이용해 먹는 도구가 되며 우리 모두는 자폐증 환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폐증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정치가들 탓만 할 것도 아니며 정치가들에게 기대할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적으로 연대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을 것이다.

나는 타자를 통해서만 존재하고 타자와 나눔으로써만 존재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공동체의 공간을 우리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작은 책방 하나 살리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 길임을 현명한 독자들께서 잘 아시리라 믿으며 십시일반 모다들 같이 도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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