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민심기행- 자갈치에서 서면까지
부산 민심기행- 자갈치에서 서면까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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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밤 <시민의소리> 편집회의. TV에선 첫 대선후보 합동토론회가 진행중이었다. 다음호에 대한 기획회의는 두시간 가까이 기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어도 '뾰족한 게'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한 기자가 말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게 뭘까. 부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아닐까."

그랬다. 이 지역은 '어차피' 민주당 경선에서 노후보를 선택했던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공은 부산사람들 손에 넘어간 것이다. 언론에선 부산이 '심상찮다'고 연일 보도가 나오는데 실제 그런지는 현장에 가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다.

회의는 급진전 됐다. 부산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부랴부랴 결정하고 계획과 몇 곳에 미리 연락을 전한 뒤 이날 밤 막차를 타고 기자는 바로 부산을 향했다.

'개인적으로'를 강조한 택시기사

어디서나 타지에 가면 처음 만난 지역민은 대개 택시기사다. 4일 새벽에 도착한 부산 터미널에서도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가 다가와 이동하는 동안 말벗이 돼 주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빠른 말씨만큼이나 운전도 거칠었다. 새벽에 차들이 별로 없었던 탓도 있었으리라.

"신문방송에서 부산에 노무현 바람이 불고 있다고하던데요."
"어데예. 젊은 사람들에서나 그러지 부산민심이 어데 그럽니꺼."

일단 말문이 트인 택시기사의 이야기는 꼬리를 물었다.

"김대중이가 대통령되고 부산사람들 설움도 많았다 아임니꺼. 아들들 비리라 뭐라 그게 어디 정칩니꺼. 내~도 개인적으로, 이,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이가 이회창이보다야 낫다 아입니꺼. 아이들도 아직 어리니 김대중이처럼 자식들 문제도 없을 것 같고, 이회창이처럼 군대문제도 없다아입니꺼."

"그럼 기사님은 노무현이 찍겠네요."

"그래도 안됩니더. 노무혀이가 싫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싫은 기라예."
'개인적'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택시 기사의 말 속에서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그동안의 보도들이 헛된 것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갈치 아지매와 아재들

하루라는 짧은 시간동안 부산 민심을 읽는다는 것은 자칫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격이 되기 쉬웠다. 그러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시민들은 만나야 했다. 기자는 부산에서 가장 정보가 빠르다는 자갈치 시장의 새벽을 향해 이동했다.

4일 아침 6시30분. 부산시 수협 자갈치 공판장, 일명 자갈치 시장의 아침은 경매가 끝난뒤 좌판에서 소매가 한창이었다. 새벽장을 보러온 아주머니의 고기 고르는 진지한 모습이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고를 것인가 고민하는 모습과 겹쳐졌다.

좌판에서 배달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두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새벽 3시에 공판장에 나와 5시에 경매입찰을 마친 뒤 한숨 돌리며 식사중이던 쉰한살의 한 아주머니가 "젊은이들은 노무현이고 나이든 사람들은 이회창이라데예"라고 하자, 함께 식사하던 두 살 위 아주머니가 "우리같은 서민들이야 노무현이 낫지만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다 똑같지 않겠나"라고 맞받는다.

자갈치 시장 어판장 주변에는 커피수레를 중심으로 중년의 이른바 '자갈치 아재'들이 모여들곤 한다. 대여섯명의 자갈치 아재들이 있는 커피 수레 옆에서 박씨(48)와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예전하고는 달라졌제. 그래도 노무현이가 부산서 고생은 많이 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 있던 아제들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노무현이가 부산에서 한게 뭔데, 민주당에 붙어가 부산에다 한게 뭐있다고 그라노, 어이." 난데 없는 호통에 박씨는 입을 닫아버렸다.

근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이후 대학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시민
들과의 대화는 계속됐다.

"부산사람 아인겨"와 "민주당은 안된다"

한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3일 열린 TV합동토론 결과 부산의 시청률이 41.4%로 서울을 포함한 전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만큼 부산 시민들의 대선 관심도가 높다는 반증이다.

동의대의 한 여학생은 "TV토론을 봤다. 둘이서 싸우고 또 한 사람은 싸잡아 비판하는 모습인게 사실이었다"면서도 "그래도 젊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게 좀 더 낫지 않겠나"고 말하기도 했다.

오후 해거름에 부산시의 최대 번화가라 일컬어지는 서면으로 옮겼다. 좀더 다양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노무혀이가 (대통령)묵는다. 이번엔 노무혀이가 묵을깁니다. 노무혀이가 사람도 낫고 또 부산사람아인겨."

롯데백화점 서면지점 후문쪽에서 만난 대학생 김현석씨(27)는 이날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노후보를 지지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노무현'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가 속한 당에 대한 지지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좋아서가 절대 아임더"라고 분명히 밝혔다.

젊은이들의 반응 역시 다양했다. 하루전 대선후보 TV합동토론을 매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길지 않은 얘기 속에 어느 정도 표심은 정한 듯한 말들을 내놓곤 했다.

"민주당은 안됩니더. 금마들 아, 대통령 됐다고 부산사람들 홀대했다 아님니꺼. 우리 아버지도 아이엠에프 뒤에 장사 안된다고 아직까지 맨날 민주당 욕하고 있습니더. 옛날이 좋았다고 말입니더."

강정현(21)씨는 반민주당 쪽에 서 있는 경우였다. 그런데 반민주당쪽이라는 것이 곧 한나라당쪽이라는 도식은 웬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발견한 재밌는 점은 선거에서 노무현과 민주당은 있어도 한나라당은 없다는 것이다. 굳이 요약하자면 '노무현 좋다' 또는 '민주당 싫다'가 후보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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