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새 생명 잉태하는 겨울나기
[세상보기]새 생명 잉태하는 겨울나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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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송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사무국장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다. 가을의 정취를 다 느껴보기도 전에 불쑥 찾아온 겨울덕분에 여름이자 겨울이라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

없는 사람에게는 겨울나기가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때보다 일찍 찾아온 겨울은 이래저래 걱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진짜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기상이변과 엘리뇨의 영향으로 따뜻한 겨울이 될 거라는 장기기상예보가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연한 가을의 추색을 뽐내던 무등산도 겨울채비를 단단히 갖춘 듯하다. 나무들은 모든 잎새를 떨구고 맨몸으로 겨울을 나고있다. 성하(盛夏)의 계절에는 푸르름을 뽐내며 온몸을 감싸다가 매서운 겨울 바람을 맞을 지금 정작 온몸을 드러내는 용기는 그들의 삶의 방법이고 지혜라고 한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나무는 모든 영양분을 뿌리나 줄기로 보내고 잎들을 떨어뜨려 잎에서의 수분 증발을 막아 동사를 방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따스한 봄날을 예비하며 잎이 되거나 꽃이 될 것들은 겨울이 되기 전에 이미 겨울눈을 만들어 털이나 비늘잎으로 추위를 견딜 채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단풍의 화려함에 경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들은 분주하게 내일의 생명활동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에게 차가운 겨울바람은 내일을 예비하게 하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겨울나기는 내일의 부활을 꿈꾸며 화려함 대신 내실을 쫓으며 우직하게 새 생명을 예비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며 자연을 약탈하던 우리네 모습이 실은 자연이 갖고 있는 지혜의 반도 못 따라가는 것 같다. 연말연시가 온 것은 구세군의 종소리가 아니라 공사중인 도로에서 알 수 있다는 냉소에도 불구하고 한해의 마무리를 어김없이 공사중인 인도(人道)에서 볼 수 있어 씁쓸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멀쩡한 보도블록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어수선함 속에 겨울을 나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만큼은 흑색선전과 지역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우리의 지도자를 선택했으면 하는 바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감정과 흑색선전이 맹위를 떨치는 우리네 선거 판은 암울하다.

겨울에 선거를 치루는 이유가 찬바람으로 머리를 식히고 냉철한 판단으로 미래를 선택하라는 뜻이라는 선의의 해석은 Negative한 선거운동방식 앞에 그저 꿈보다 해몽이 좋은 이야기일 뿐이다. 아직도 우리는 버릴 것은 버리지 못하고, 쫓지 않아도 될 화려함만 쫓고있는 것이다.

그래도 어린 여학생들의 무고한 죽음이 헛되지 않게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아 보자며 찬바람을 가르는 당찬 함성과 민족의 생명줄을 지키고 땀의 결실을 보장하라며 힘차게 뻗은 투박한 농부들의 손에서 희망을 본다.

그리고 메아리 없는 함성일지라도 정책선거를 주창하는 시민단체의 모습에서 안도를 한다. 그들의 모습은 맨몸으로 겨울을 맞이하는 우직한 자연의 겨울나기와 닮아있다. 그래서 그들이 보내는 겨울나기가 비록 혹독한 시련의 시간일지라도 화려한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변하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에게 이번 겨울이 차갑지만 매섭게 어리석음을 깨우쳐 화려함보다는 우직함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의 겨울나기가 따사로운 봄날의 새로운 생명을 예비하는 겨울나기였으면 좋겠다.

/김희송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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