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엄마 빨리와"
<거울 앞에서>"엄마 빨리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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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또 시작이다. 양말 한 짝, 또 신발가방은 이쪽에 가방은 저쪽에 온방 가득 널려있다. 어떨 땐 급히 벗어 던진 신발 한 짝이 냉장고 앞까지 굴러와 있는 적도 있다. 개구쟁이 두 아이들 덕분이다.

반찬 뚜껑은 제대로 덮혀 있는 것이 없고, 먹다 남은 음식까지 집안은 온통 난리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도 일곱시가 훌쩍 넘은 시각. 10분 간격으로 전화를 해대는 아이. "엄마, 빨리 와"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목소리로 전화를 해대기 시작한지가 벌써 30분.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는 오늘은 기어이 7시를 넘기지 말아야지. 며칠 전부터 딸아이가 해달라고 조르고 있는 떡볶이를 오늘은 기어이 해주고야 말아야지. 엄마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구나 싶어서, 그렇게 다짐을 하고 나왔는데 아직도 몸은 사무실에 붙어 있다. 이렇게까지 목숨걸고 안 해도 되는 일인데 어떻게 된 것이 어두워지면 더 일을 하고픈 욕심이 생기는 것인지.

부랴부랴 책상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8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비단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들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오히려 내가 겪고 있는 이런 고민이나 걱정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정말 배부른 투정처럼 보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이 정말 남보다도 더 먼 타인처럼, 뒷짐만 진 채 모든 일에서 철저히 방관자로 서 있을 때 일하는 엄마들은 너무나 슬프다. 울음 섞인 아이의 전화를 듣는 순간, 매 순간만큼 가슴이 먹먹해지고, 정말이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냐? 누구를 위해서 나는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인가 회의가 든다.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꿈이 있듯이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기 이전에 한 자연인으로서의 내 미래에 대한 책임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아기들이 좀더 자라서. 내 딸이 좀더 자라서, 좀더 편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내 딸이 엄마가 되어서, 지금의 나처럼 아이의 육아와 가사일 때문에 이중삼중으로 힘들어지지 않도록 맘놓고 편하게 직장생활에만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그런 환경들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내 자리를 힘겹지만 지키고 있다.

그런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이 땅의 모든 엄마들아. 이 땅의 모든 일하는 딸들아.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나중에 뒤에서 따라올 나의 딸들의 튼튼한 디딤돌이 되어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더욱 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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