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노벨상 받은 대통령 나라인가요?
이것이 노벨상 받은 대통령 나라인가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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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노벨상 받은 대통령 나라인가요?" 모형감옥서 '국가보안법 철폐' 체험농성 진재영씨 폭설 찬바람속 비닐천막에 스스로 갇혀 철야단식농성 9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 8년째 쫒기는 최장기 수배자 그나마 설 며칠전 어머니와 상봉 콘크리트 바닥에 맛난 음식 차려놓고 눈물바람만 하다 가신 어머니 "부패없는 나라 희망한 아들이 무슨 죄냐?" 김대통령께 편지 철폐될 그 날까지 국보법을 감옥에 가둬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바쁜 사람들이 잔뜩 움츠린 채로 명동성당 언덕을 쫓기듯 내려가고 있다. 저기압의 하늘은 짙은 잿빛을 띄고 예배당의 첨탑 아래까지 낮게 내려왔다. 응달에는 잔설이 얼어붙어 있고 그 위로 매서운 찬바람이 일어 거리가 부옇다. 거기에 햇살처럼, 카랑카랑한 여학생의 확성기 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사상의 자유 억압하는 반민주 반민족적 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정치수배 해제하고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는 0.75평 독방모형의 감옥 2동이 지어졌다. 그 안에 담요를 한 장 깔고 수의를 입은 사람들이 스스로 갇혀 있다. 이날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며 명동성당 앞 농성에 들어간지 247일째. 어떠한 잘못도 용서한다는 카톨릭 대희년(Jubilee)의 겨울에 성당측이 한국통신 노조의 무질서함을 빌미 삼아 입구 언덕의 천막을 전부 뜯어버려 길거리에 나앉은지 27일째 되는 날이다. 농성단은 20년만의 폭설이 내린 그 1개월을 계단 위에 비닐을 치고 철야 단식농성을 하며 버텼다. 초인적 투쟁 이후 농성단이 임시거처를 마련할 겸, 투쟁 홍보를 강화할겸 해서 궁리 끝에 마련한 것이 모형감옥 체험농성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온몸으로 저항하는 주체적 세력이 여기 모인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수 석방,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단'이며 그 단장이 진재영(31)씨다. 진씨는 9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8년째 쫓기고 있다. 김영삼 정권이래 정치 수배자 223명 가운데 최장기 수배자인 셈이다. 그가 내민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지금 진보·노동진영에 촘촘히 박혀있는 많은 운동권 활동가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90학번인데 그 무렵 전교조 탄압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진씨 역시 광주고려고 재학중에 선생님이 해직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회현실에 눈을 떴다. 그는 대학에서 반전반핵 동아리 활동을 거쳐 총학생회장을 맡은 94년 6월 홍익대에서 쌀 수입개방 반대시위를 벌이고 귀향하다 열차를 정지시켜 집시법 위반으로 수배됐다. 이어 7월25일 전남대 학생회관에 '김일성 주석 분향소'를 설치한 혐의로 국가보안법 수배가 덧씌워졌다. 진씨는 그로부터 쫓겨다닌 8년을 "고통스러운 세월이었지만 결코 후회스럽지는 않다"고 전했다. 그에게는 '1천만원의 현상금과 2계급 특진'이 훈장처럼 따라붙어 경찰의 표적이 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로 들어가다 잠복한 경찰의 봉고차에 치어 체포됐다가 학생들의 도움으로 구출된 일, 총을 든 6명의 경찰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 목욕탕에서 속옷바람으로 도망쳐 나온 기억. 완도(금당면) 집에는 경찰이 상주하여 부모가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95년 12월 서울로 피신하여 노숙도 하고, 자취집, 대학교 학생회실을 전전했다. 어머니와의 만남은 명동성당이라는 '성역'으로 들어와서야 가능했다. 설 일주일 전날 어머니(이귀자·57)는 그 콘크리트 계단에 "맛난 음식들을 내려놓고 눈물바람만 하다가" 귀향했다. 어머니 이씨는 그 길로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자식은 굶는데 어미는 배가 고파 끼니를 찾아먹으려고…눈물이 목까지 차 올라 몇 번이나 수저를 놓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고향에서 얼굴을 못 들었던 부끄러움"이 "부정부패가 없고 행복한 세상을 위해 나선 자랑스런 아들이 무슨 죄냐"고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씨는 너무 길고 너무 많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둠이 내려앉은 겨울날 어느 가정에서 풍겨나오는 된장국 냄새와 단란한 얘기소리에 눈시울이 붉어지더라"고 적고 있다. 진씨는 "너무 고통스러워 자수도 생각해봤지만 그것은 내가 했던 일에 대한 스스로의 부정이기 때문에 자수할 수도 잡힐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창하고 남북정당회담이 열리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나라의 현실"이라면서 "국가보안법이 철폐될 때까지 결코 명동성당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수배 8년, 2월 19일로 농성 279일째의 아침을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땅거미가 짙어진 명동성당 언덕길에 여전히 무심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고 "사상의 자유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하라'는 여학생의 카랑카랑한 확성기 소리도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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