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기 어떠세요
요즘 살기 어떠세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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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식 발표한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는 월 93만원. 광주 도시생활인의 생활은 이 기준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까 궁금하다. 물론 주부도 직장인도 상인도 하루 버티기가 고달프다며 한숨 쉰다. 그래도 이들은 오늘에 실망하지 않고 내일을 기대하며 산다. 이들의 목소리에서 그 상관관계의 그림을 그려본다. <편집자주> <실내장식업 주수민씨> 투자비용 때문에...떠밀려 해요 작년 하반기부터 일감 줄어 직원 모두 내보내고 디자인부터 미싱 기획 영업까지 영세 자영업체에 대한 혜택 전무 담보 없으면 1천원도 융통 안돼 적자 나는 공사라도 성실하면 희망은 있겠죠? "떠밀려서 살고 있습니다. 문 닫아야 하는 판인데, 그동안 투자 비용 때문에라도 그냥 현실에 맞춰가면서 견뎌내고 있지요." 병원, 학교, 호텔, 사무실, 가정…. 사무실이든 집안이든 실내를 아늑하게 꾸며야 일하는 맛도 새로워지고 사람 사는 활기도 묻어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일, 토털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 주수민씨(42 '좋은 친구들'기획상무 ). 남편이 대표를 맡고 그는 기획상무이사 직함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획, 영업, 경리 일까지 모두 혼자 감당한다. 혼자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급속히 추락하는 경기 앞에 이겨낼 장사 없다던가. IMF시절도 넘겼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감이 줄어들면서 폐업 위기에 몰렸다. 1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앞날을 책임지기 힘들어졌다. 고민으로 날을 지새우고, 결국 올 설날에 앞서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지금은 남편과 둘이서 그 몫을 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커텐 디자인부터 미싱까지 혼자 하는 철야작업을 하루 세끼 밥먹듯 한다. "영세한 사업체로서 무조건 열세에 몰리는 때가 가장 힘듭니다. 2년전 어느 병원 물량을 따기 위해 한달여 매달렸는데 서울 업체로 낙찰되기 직전에 그 정보를 입수하고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견적서를 제시해 그 물건을 따왔습니다." 남는 장사는 아니라도 적자를 안고서도 공사를 맡은 경우는 그래도 낫다. "남기기는 커녕 만든 견적서가 백지화되는 것이 영세업자가 당면한 현실"이라며 그 예로 관급공사 따내기가 영세업자로서 가장 어려움이라고 꼽는다. 또 '여자가 뭘 안다고' 하는 식으로 대하는 남성하고는 상대 안한다. 반면 '여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면서 오히려 부드럽게 대해주는 남성을 만났을 때 일하는 보람은 따로 맛본다. "정책상으로도 영세 자영업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전혀 없습니다. 1천만원이라도 바로 조달해서 쓸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담보할 재산이 없으면 한푼도 융통이 안됩니다. 그래서 몸으로 뛰면서 하루 벌어 하루 막고 하는 신세지요." 한마디로 그는 '하루를 정신없이 산다'고 말한다. 먹이시장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윤 폭을 줄여서라도 계속 일감은 맡아야 한다. 내일이라도 경기가 좋아지는 날이 오리라고 한가닥 기대를 걸고 배고픔을 참아 낸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일감 따러 목포에 갔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 함평 쯤이었까. 들판 건너편에 공사중인 건물이 눈에 띄었다. 다짜고짜 책임자를 찾아 '건물이 완공되면 실내장식 작업은 내게 맡겨달라'고 매달렸다. 그 건물은 신축 중인 함평면사무소. 중간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관급공사를 따낸 케이스라고 말한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서 스스로 성취감을 맛보았다. 돈보다 상대가 보여준 마음의 넉넉함에서 배고픔을 보상받은 것이다. "어쨌든 힘들지만 열심히 살면 이루어진다"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갖고 하루를 채운다. 적자 나는 공사라도 끝까지 성실하게 마무리한다는 생각이라야 경쟁사회에서는 이긴다. 그래서 그에게 기회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음을 기다리면서 재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사람을 대하고, 공사도 맡는다. 지난 1년여 그는 저축이란 단어를 모르고 산다. 그래도 문 닫지 않고 남편과 둘이서 꾸려 가는 하루하루가 시어머니, 그리고 딸과 함께 4인 가족의 행복을 지킨다고 생각하면서 피곤함을 달랜다. /박남순 기자 <택시기사 김상운씨> 『나는 아직까지 DJ를 비난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정부를 욕하는 손 님들 부쩍 늘었어요. 택시기사들이 일종의 여론 집합소 아닙니까. 서민들 먹고 살기 힘든데 다 가진 사람들 금융비리 펑펑 터지죠. 그나마 정치권 내에서도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밑바 닥 사람들 사는데는 관심도 없죠. 집권당도 우왕좌왕....』 경력 5년의 택시기사 김상운씨(39ㆍ광주시 북구 우산동). 요즘 승객들 이야기가 심상치 않 게 흘러가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요즘같이 자동차가 많은 세상에서 누가 택시 탑니까. 다 서민들이죠. 그런데 최근들어서 는 장사 잘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올해 들어서 특히 심해졌는지 대충 이야기 를 들어보면 작년 말보다도 두배는 살기 힘들어졌다는 겁니다. 맨날 딴죽을 거는 한나라당 은 제쳐두더라도 DJ나 정부여당도 화살을 비켜가지 못할 겁니다』 「광주에서 살아가기」가 벅찬 것은 김씨 자신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몰면서 위장약이든 신경통약이든 약을 먹지 않는 기사는 거의 없습니다. 하루 12 시간 운전만 하다보니 밥을 제 때 먹을수도 없고 하체도 부실해지고 하루 하루 생활도 완전 히 흐트러지는 거죠. 적당한 문화생활이요. 그런게 어디 있습니까. 애들까지도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 돈 주는 기계 정도로나 여기고.... 12시간 꼬박 일하고 집에 들어가 잠만 퍼질 러 자고 있으니 집사람인들 좋아하겠습니까』 김씨는 사업을 하다 택시를 운전한지 5년이 훌쩍 지나 한참 고참이 됐지만 지금이라도 적 당한 일만 있으면 직업을 바꿔보고 싶어한다. 『광주에서 돈 벌고 살아가기가 갈수록 힘들어져요. IMF 전만해도 열심히 뛰면 한달 120~130만원은 벌었어요. 요즘 100만원 벌기가 빠듯합니다. 과속, 난폭운전...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택시기사 입장에서 보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요. 시민들한테는 사실 미안하 죠』 역시 IMF다. 하지만 김씨가 느끼는 「광주에서 택시기사로 살아가기」가 힘든 점은 꼭 그 런 것만은 아니다. 『현재 모든 제도는 서민들이 제대로 밥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전액관리제만 해도 그래요. 정부에서는 2년 전부터 전액관리제(완전월급제)를 실시하라고 하지만 대부분 택시회사들이 옛날 사납금 방식 그대롭니다. 적극적으로 감독하고 시정해야 할 시에서는 「고소ㆍ고발이 있어야 조사를 할 것 아니냐」 이런 식이니 쉽게 고쳐지기는 힘들겁니다』 중학교 입학하는 자녀를 두고 혼자서 「밥벌이」를 해야하는 김씨는 택시신협에서 그야말 로 「생활비」를 대출하지 않으면 살림이 힘들 정도다. 『요즘 조금만 돈이 있는 사람이면 누가 택시 탑니까. 다 서민들이죠. 손님들이나 나나 똑 같은 심정이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 안내면 살기 힘든 형편입니다. 은행 문턱은 왜 그리 높은지. 많이 배우고 돈 있는 사람들이야 「억 억」소리가 쉽게 나오지만 단 돈 500만 원 빌려보려 해도 그 뭔가요, 총 소득액 서륜가요. 아예 자격도 안되니 포기하고 말죠』 김씨는 택시기사와 가족 등 2만여명이 「택시밥」으로 생활을 꾸려간다고 얼추 계산했다. 『택시 업주들 한 30여명 되죠. 모든 행정이 30명 위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도 행정기관 이나 언론이나 2만명에게 귀기울여주는 곳은 없어요. 한마디로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현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언제까지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불합리한 택시제도에 대해서는 청와대 홈페이지에라도 이야기를 써 올릴 겁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누구도 우리 이야기 들어주지 않으니까요. 하여간 답답한 가슴들이 너무 많아요. 다음 선거 때 정치인들 바짝 긴장해야 할 겁니다』/한기용 기자 <간판집 고영환씨> "불황일수록 좋지 않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광주시 동구 학동에서 광고업, 일명 간판집(고은광고사)을 운영하는 고영환씨(41)는 간판업 도 경기에 민감하기는 매한가지라고 한숨이다. "불황이다보니 업소 주인이 자주 바뀌고 그러다 보면 간판업은 호황을 누릴 것 같죠. 하지 만 요즘 기존 간판을 보수해서 쓰지 누가 새 간판을 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우리는 간판 을 떼어다 고쳐서 다시 달아야 하기 때문에 새 간판을 만드는 것보다 일은 두배고 수입은 3 분의 1로 줄어들었어요" 거기다 간판집이 IMF이후 오히려 늘어 가격 낮추기 경쟁을 하고 있는 것도 이 업계의 불황 을 부채질 하고 있다는 게 고씨의 설명. 간판집이 늘어난 것도 IMF탓이다. IMF전에는 광주시내에 500개에 그치던 업소가 요즘은 700개로 늘어났는데, 과거 종업원으로 있던 이들이 간판집의 구조조정과정에서 떨어져 나가 아예 자기 업소를 차리게 됐다는 것. "작년 11월부터 직원 얼굴쳐다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고씨는 IMF직후 3명의 직원을 1명으로 줄였지만 그래도 지난해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일감 이 있었는데 지난해말부터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토로했다. 결국 고씨는 최근 30평의 사무실을 15평으로 줄이기까지 했을 정도다. 광고업계의 불황은 우리 경제의 축소판이라는 게 고씨의 분석이다. 실제로 은행, 관공서, 유 통업체, 인테리어, 건설업계가 잇따라 구조조정여파에 불황을 겪으면서 이들업체로부터의 광 고물 수주가 차츰 줄기 시작하면서 광고업계도 곧바로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어 음결재를 받은 간판집의 경우 발주업체가 부도로 쓰러지면 속수무책으로 손해를 떠안은 경 우가 허다하다는 것.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현실화 돼가고 있습니다" 광고업계에 해뜰날이 언제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고씨의 답변이다. 그는 큰 업체의 물량 은 광주의 몇몇 대형업체나 서울의 업체가 대부분 수주하고 영세업소는 이들로부터 하청을 받거나 소규모 광고물에 대해 제살깎기 경쟁을 하는 형국이라는 설명. 따라서 고씨는 광고 업계도 건설업처럼 큰 업체는 사업수주만 하고 차익을 챙긴 뒤 하청을 주는 식의 관행을 막 을 방법이 없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광고업도 제조업의 일종입니다. 거기다 환경산업입니다. 옥외광고물을 만드는 업자들이 도 시미관을 좌우한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대접받는 날이 오길 바랄뿐입니다" 광고물에 대한 적정한 가격보장과 함께 영세업소의 보호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경기회복은 희망사항이며 소원"이라는 고씨는 자신의 사무실 바로 옆에서 미용실을 운영하 는 부인과 함께 올해 중3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두고 있다. /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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