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자신의 모든 것을 순간의 열정과 바꾸는 것...
양: 어찌 보면 모든 걸 잃는다고 볼 수도 있지.
최: 어떤 것이 행복한 걸까.
신: 영화 속 인물 누구도 선, 악, 불행, 행복을 정의할 수 없어. 그걸 넘어선 것 같아. 그냥 일상이 남루한 거야.
양: 그런데 인규에 대한 묘사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멋진 몸매에 잘생긴 의사라..
최: 맞아. 그런 남자라면 삶이 남루하거나 지루하지 않더라도 혹하겠더라. 뭐.
신: 동감이야. 원작에서 인규는 시골 우체국장이야. 영화 속 인규처럼 멋진 남자는 아니지.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 무료한 인물인데 영화 속에서는 그런 묘사가 약했지. .
탈출구가 필요했던 영화속 '미연', 보통 아줌마들 내면 아닐까
양: 사실 미연이라는 캐릭터가 나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 탈출구가 필요한 상태라는 점에서 말야. 미연 안에 숨겨져 있는 열정이 나에게도 있는 것 같아.
신: 그래서 양희연 씨가 사회활동을 많이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양: 맞아. 나름대로 열정을 분출할 곳을 바깥일에서 찾는 거야. 요즘에는 국선도 수련도 해.
신, 최: 하하. 도까지 닦으시다니. (모두 웃음)
최: 남자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을까.
신: 여자들은 대부분 '성', '사랑'에 대한 생각이 무거워. 하지만 남자는 달라.
양: 맞아.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성, 사랑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야.
신: 한국에서 여자가 혼자 살면 많은 것을 내놔야 해. '성'과 '사랑'에 대한 무거운 관념이 내 것을 내놓는 데 한 몫 하지.
양: 영화에서 미연이 혼자 자기 길을 간 것이 왜 그리 가슴 아프게 다가왔을까.
신: 미연이 인규와의 사랑 자체를 간직하고 살 수 있다면 차라리 그건 행복한 거지. 하지만 현실은 구질구질해. 현실 속에서 미연은 분명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정신적 육체적 시달림을 받을 거야. 그런 면에서 영화는 현실에 비하면 굉장히 진부한 거지. 현실은 너무 구질구질해서 소설로 쓸 수 없어.
양: 사실 멋진 사람 보면 관심 가는 것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아줌마여서 그런 감정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부자연스러워.
신: 색안경을 끼고 보지.
양: 근엄하게 보는 거야. 결혼한 여자라고, 남자라고 감정까지 규정짓는 것 자체가 무척 우스워. 10년 전의 나나 지금의 나나 사실 감정적인 변화는 없거든. 난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아. '사랑' 못한다고 규정지으면 장애인이지 뭐야. 그렇게 살기는 싫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단 말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해.
신: 나는 사랑하지 않을 때가 자유로운 것 같애. 사랑하면 약해져.
양: 맞아. 특히 여자가 그래.
신: 남자들은 사랑은 사랑이고 일은 일이거든. 그게 가능해.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
자기를 찾은 미연의 용기있는 선택
양: 여자들 대부분이 모성본능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 나를 희생해서 남을 보호하는 것. 그렇게 순종하고 남자를 존중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이 내면화되어 있는 것 같아.
신: 영화에서 미연이가 인규 만나러 잠옷에 맨발로 인규집에 뛰어갔을 때 있잖아. 그때 인규가 위험한 사랑 싫다며 미연을 돌려보냈잖아. 그 때 미연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을까. 똥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을 꺼야. 그런데 사랑이 그래. 사랑하지 않았다면 미연이 그럴 필요가 없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인규에게 몸과 마음이 가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인규는 언제든지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어하고.
양: 나는 지금도 정말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어. 몸과 마음이 완전히 일치되는. 남편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상대가 될 수도 있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신: 완전한 사랑은 없을 걸.
최: 그럼 너무 슬프지 않나
양: 지금도 나는 가능할 것 같애.
신: 하긴. 난 사랑에 회의적이지만 또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그런 사랑이 밀려온다면 빠질 것 같기도 해.
최: '밀애'는 단순한 불륜 영화가 아닌 위험한 사랑을 통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는 이야기였어. 오늘의 결론을 내려본다면?
양: 마지막 장면에서 미연의 용기 있는 선택.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자가 된 것이지. 나는 미연처럼 못할 것 같아. 그래서 처절했어. 아줌마는 모든 것의 열외 대상이잖아. 아줌마도 사랑이라는 부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영화였어. 자신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 인규와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때 옷을 입고 사진 찍으며 애써 웃는 모습이 정말 눈물나더라. 눈물 안 났어?
신: 여자 혼자 사진 찍는다는 거, 쉽진 않거든. 나도 혼자 스티커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아직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어. 사람들이 그 사진 속에 담긴 내 상처까지 볼 것 같아서. 바람 피다 신세망친 여자이야기가 아니라 뜨거운 사랑을 통해 자아를 찾는 여자 이야기. 노처녀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는 한마디로 혁명이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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