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현실과 '밀애'하다
남루한 현실과 '밀애'하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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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 첫 장편영화 '밀애'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시민의 소리에서 '유쾌한 수다' 자리를 마련했다. 통속적으로 보면 '불륜'을, 다르게 보면 '위험한 사랑'을 다룬 영화 '밀애'는 남편의 외도를 경험한 미연이라는 여자와 세상에 간섭하기 싫은 인규라는 남자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서른 셋 아줌마 양희연(33 대안문화 전문기자), '풍지풍파' 헤쳐온 서른 하나의 처녀 신은정(31 방송작가), '세상물정 모르는' 스물 다섯 아가씨 최지희(25 본지 기자)가 '밀애'를 보고 나눈 밀어.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 세 명의 여자. 아줌마는 울었고, 처녀는 공감했고, 아가씨는 의아해했다는데. 그 현장을 지상 중계한다. 결혼한 사람이라고 감정 규정짓는 것, '장애인'과 다르지 않아 바람피다 신세 망친 여성 아닌 사랑을 통해 자아 찾는 여성 그려 신은정(이하 신): 다큐멘터리 감독이 찍은 연애 영화라기에 사실 나는 정사장면에 관심이 많았어. 얼마나 다큐멘터리 적으로 찍었을지. (모두 웃음) 모두: 좀 약했지? (웃음) 최지희(이하 최): 양희연씨 우는 거 보고 정말 놀랐어요. 뭐가 슬프지? 저 영화를 보고 왜 눈물이 나지 그랬어요. 신: 아직 젖비린내 나는 아가씨라서 그래. 나는 미혼이지만 나이가 이 정도 되다 보니 양희연 씨 마음이 이해되는데 말야. 양희연(이하 양): 어머, 누가 울었다 그래? (웃음) 마지막 장면이 정말 감동적이었어. 인규가 죽은 후 미연이 일용직 노동자로 세상의 모든 비바람을 맞고 살면서 그때서야 자기 자신으로 서 있다는 그 말이. 나는 진짜 그렇게 못 할 것 같아. 늘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이 있지만 현재의 안락함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거든. 신: 나는 이 영화에 동감하면서도 눈물이 안나오는 게 '내 인생은 저러지 않아야지' 하고 경계하면서 그들의 사랑을 보기 때문이야. 인생의 상처를 경험해가면서 영리해진다고 할까, 지친다고 할까. 아직 나에게 사랑은 전쟁이야.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애에 몸을 던지면 안돼. '사랑'이라는 게임에서 이기려면 연애라는 감정을 냉정히 바라봐야 해. 사실 나도 31살까지 미혼으로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풍지풍파를 겪었겠어. 미연이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인규와의 사랑은 극한방법의 '일탈'이야. 그 일탈을 통해서 자신을 찾는 거지. 양: 그렇지. 자극이지. 고통을 잊는데 필요한 것이 고통보다 더한 자극이지. 신: 사실 이 영화이야기는 너무 평범해. 우리 삶이 더 남루하거든. 원래 사랑이 그런 거야. 이 영화이야기가 대단하다면 그 많은 모텔들이 왜 생겼겠어? 우리 일상이 영화보다 더 대단해. (모두 끄덕끄덕) 영화속 불륜보다 현실이 더 남루해 최: 나는 미연도 그 남편도 이해가 안 되던데. 왜 그러고 같이 살아? 저 부부를 지탱하는 끈이 뭐야? 아이인가? 양: 이혼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이지. 그런데 그 선택에 아이가 중요한 부분이긴 해. 신: 물론 아이도 중요한데 집착도 있지 않을까. 남편, 가정, 가족 그런 것에 대한 집착. 양: 결혼한 사람은 '보통'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보통을 유지하고 싶어하지. 가정, 아이들... 그렇게 원만한 것 말이야.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잖아. 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더 그렇더라. 양: 그렇지. 사회적 틀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지. 영화에서 미연이 그 틀을 모두 부수고 나오는 것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어. 만약 나한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미연처럼 용감하게 정리하는 삶을 선택하지는 못할 것 같아. 영화'밀애'의 한장면

최: 자신의 모든 것을 순간의 열정과 바꾸는 것...
양: 어찌 보면 모든 걸 잃는다고 볼 수도 있지.
최: 어떤 것이 행복한 걸까.
신: 영화 속 인물 누구도 선, 악, 불행, 행복을 정의할 수 없어. 그걸 넘어선 것 같아. 그냥 일상이 남루한 거야.
양: 그런데 인규에 대한 묘사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멋진 몸매에 잘생긴 의사라..
최: 맞아. 그런 남자라면 삶이 남루하거나 지루하지 않더라도 혹하겠더라. 뭐.
신: 동감이야. 원작에서 인규는 시골 우체국장이야. 영화 속 인규처럼 멋진 남자는 아니지.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 무료한 인물인데 영화 속에서는 그런 묘사가 약했지. .

탈출구가 필요했던 영화속 '미연', 보통 아줌마들 내면 아닐까

양: 사실 미연이라는 캐릭터가 나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 탈출구가 필요한 상태라는 점에서 말야. 미연 안에 숨겨져 있는 열정이 나에게도 있는 것 같아.
신: 그래서 양희연 씨가 사회활동을 많이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양: 맞아. 나름대로 열정을 분출할 곳을 바깥일에서 찾는 거야. 요즘에는 국선도 수련도 해.
신, 최: 하하. 도까지 닦으시다니. (모두 웃음)

최: 남자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을까.
신: 여자들은 대부분 '성', '사랑'에 대한 생각이 무거워. 하지만 남자는 달라.
양: 맞아.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성, 사랑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야.
신: 한국에서 여자가 혼자 살면 많은 것을 내놔야 해. '성'과 '사랑'에 대한 무거운 관념이 내 것을 내놓는 데 한 몫 하지.
양: 영화에서 미연이 혼자 자기 길을 간 것이 왜 그리 가슴 아프게 다가왔을까.
신: 미연이 인규와의 사랑 자체를 간직하고 살 수 있다면 차라리 그건 행복한 거지. 하지만 현실은 구질구질해. 현실 속에서 미연은 분명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정신적 육체적 시달림을 받을 거야. 그런 면에서 영화는 현실에 비하면 굉장히 진부한 거지. 현실은 너무 구질구질해서 소설로 쓸 수 없어.

양: 사실 멋진 사람 보면 관심 가는 것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아줌마여서 그런 감정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부자연스러워.
신: 색안경을 끼고 보지.
양: 근엄하게 보는 거야. 결혼한 여자라고, 남자라고 감정까지 규정짓는 것 자체가 무척 우스워. 10년 전의 나나 지금의 나나 사실 감정적인 변화는 없거든. 난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아. '사랑' 못한다고 규정지으면 장애인이지 뭐야. 그렇게 살기는 싫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단 말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해.
신: 나는 사랑하지 않을 때가 자유로운 것 같애. 사랑하면 약해져.
양: 맞아. 특히 여자가 그래.
신: 남자들은 사랑은 사랑이고 일은 일이거든. 그게 가능해.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

©김태성 기자

자기를 찾은 미연의 용기있는 선택

양: 여자들 대부분이 모성본능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 나를 희생해서 남을 보호하는 것. 그렇게 순종하고 남자를 존중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이 내면화되어 있는 것 같아.
신: 영화에서 미연이가 인규 만나러 잠옷에 맨발로 인규집에 뛰어갔을 때 있잖아. 그때 인규가 위험한 사랑 싫다며 미연을 돌려보냈잖아. 그 때 미연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을까. 똥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을 꺼야. 그런데 사랑이 그래. 사랑하지 않았다면 미연이 그럴 필요가 없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인규에게 몸과 마음이 가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인규는 언제든지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어하고.

양: 나는 지금도 정말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어. 몸과 마음이 완전히 일치되는. 남편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상대가 될 수도 있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신: 완전한 사랑은 없을 걸.
최: 그럼 너무 슬프지 않나
양: 지금도 나는 가능할 것 같애.
신: 하긴. 난 사랑에 회의적이지만 또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그런 사랑이 밀려온다면 빠질 것 같기도 해.
최: '밀애'는 단순한 불륜 영화가 아닌 위험한 사랑을 통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는 이야기였어. 오늘의 결론을 내려본다면?

양: 마지막 장면에서 미연의 용기 있는 선택.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자가 된 것이지. 나는 미연처럼 못할 것 같아. 그래서 처절했어. 아줌마는 모든 것의 열외 대상이잖아. 아줌마도 사랑이라는 부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영화였어. 자신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 인규와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때 옷을 입고 사진 찍으며 애써 웃는 모습이 정말 눈물나더라. 눈물 안 났어?

신: 여자 혼자 사진 찍는다는 거, 쉽진 않거든. 나도 혼자 스티커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아직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어. 사람들이 그 사진 속에 담긴 내 상처까지 볼 것 같아서. 바람 피다 신세망친 여자이야기가 아니라 뜨거운 사랑을 통해 자아를 찾는 여자 이야기. 노처녀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는 한마디로 혁명이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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