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끼 나누는 맘, 그게 자비요
밥 한끼 나누는 맘, 그게 자비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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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롭게' 광주 모임 도시생활이 늘상 그렇듯 이웃에 배려가 쉽지 않다. 아파트라는 네모난 상자 속에 갇혀 살다보면 이웃과 이따금 나누는 눈인사 또한 어색하다. 도시의 익명성이 때론 편하기도 하지만 두려울 때도 있다. 단란한 가정이 없는 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도시는 소외와 고독, 가난의 외딴 섬일 뿐이다. 하지만 그 섬에 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이름도 예쁜 '맑고 향기롭게' 광주모임. 이 모임은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해 날마다 밥을 짓는다. 지난 15일 광주시 북구 각화동에 있는 '맑고 향기롭게' 사단법인(회주·법정스님) 광주지부. 컴퓨터와 전화기, 책상 몇 개, 그리고 우리네 부엌보다 조금 큰 공간이 사무실이자 작업실이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뚜껑을 연 밥솥에서 나온 김이 얼굴에 확 끼얹는다. "오늘은 시간이 좀 늦었네. 빨리 빨리 하자구." 인사 받을 틈도 없이 아줌마 여섯명의 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와 리듬을 맞춰 튀김 튀기는 소리, 도마 위에서 칼질 하는 소리, 이곳저곳에서 "소금 좀 줘봐" "식초는 어딨어?" 아줌마들 소리. 이들 소리가 어우러져 맑고 향기롭게 들리는 이유는 뭘까. 책상 위에는 120개의 도시락이 입을 벌리고 있다. 각화주공 아파트에 사는 독거 노인들과 장애인 60명에게 전해줄 밥과 반찬통. 이윽고 하얀 바닥만 보이던 도시락에 빨간 김치, 파릇파릇한 나물, 오징어 튀김이 자리를 잡는다. "가정식 백반이라고 들어봤는가. 음식은 정성을 쏟아야제. 우리는 화학 조미료 같은 것은 거의 안써. 그거 넣으면 손맛이 안나" 3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순씨의 '가정식 백반' 자랑이다.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명씨도 "고추 하나 하나도 일일이 닦아서 재료로 쓴다"고 맞장구 친다. 이들이 쓰는 조미료는 '정성'과 '사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도시락 봉사는 재료 준비부터 배달까지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거치고 있다. 도시락을 싸는 데 드는 비용은 300여명의 회원들이 낸 후원금. "후원금 뿐만 아니라 쌀이나 반찬 재료 등을 갖다 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많아요."라고 이금지 총무는 말한다. 이곳에서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드는 이들 또한 특별한 재주를 지닌 사람들은 아니다. "작은 정성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마음에 계속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문채희씨처럼 '나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정성스레 만들어진 도시락은 각화복지관과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60명의 저녁 식사로 집집마다 배달된다. 단지 도시락만 전하는건 아니다. 혼자 사는 노인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안부를 묻고 자잘한 심부름도 한다. 모두들 즐겁게 일하지만 안타까울 때도 있다. 한달에 모아지는 후원금 100여만원으로는 기본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기에도 빠듯한 형편이다. "한번이라도 더 맛있는 반찬을 해주고 싶지만 형편이 닿지 않아 좋은 재료를 사용하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3년째 사용하고 있는 도시락도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단지 도시락이 낡은 것보다 이 도시락이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해 주지 못하는 데 마음 걸려 하는 것이다. "누군가 좋은 도시락으로 바꿔주면 정말 좋은 일을 할텐데... 세상엔 또 그런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라며 웃는다. "일회용 도시락을 쓰시면 어때요" 어줍잖은 제안에 따끔한 충고를 받았다. "우리가 하는 이 일이 쓰레기를 늘리는 일이라면 되겠어요. 조금 힘들어도 도시락을 되가져와 깨끗이 씻어 정성껏 싸는 마음, 그게 의미있는 것 아니예요" (아이쿠 죄송!! 아줌마 파이팅!!) '맑고 향기로운' 아줌마들은 지난해 6월부터 상담의 전화(266-6410, 269-6464)를 개설했다. 소외된 이들이 사는 도시 속 섬들에게 이들의 메세지는 '광주 희망 찾기'였다./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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