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이 돼지 내는 날
이장님이 돼지 내는 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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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 우리 동네를 위해 항상 궂은 일을 맡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른 동네는 젊은 사람도 없고, 아이들 울음소리 그친지 오래 됐다는데 그래도 저희 바닷가 동네는 젊은이들이 꽤 살지요. 하지만 결혼한지 5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막내고 아직도 새댁이라고 합니다.

제가 서울에서 우리 동네로 시집을 오자, 동네 분들이 모두 두 손을 꼭 잡고 '고맙다, 고맙다' 하셨으니까요. 그 땐 '무슨 인사가 저런가' 했는데, 농촌이 젊은 사람들 살도록 마련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농사의 기본은 식량인 쌀이라는 생각에 쌀전업농 신청
쌀값보장 대책은 국민의 생존 문제


11월 13일은 서울에서 농민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전국의 농민들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갈 것입니다. 5년 전, 제가 결혼할 때만 하더라도 쌀농사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없는 돈 있는 돈 다 모아 쌀 전업농가 신청을 해서 논을 샀습니다.
그 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웃었습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배를 사라고 했습니다. 그 돈을 논에 투자해서 돈 모으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농사의 기본은 식량이고, 식량의 기본은 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쌀 가격을 통과시키고 있으니, 어찌됐든 조금씩 쌀값은 오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논 사지 말라 말리시던 동네 분들의 우려처럼 참 힘듭니다. 기계 값, 농약 값 치르고, 농협 이자를 내고, 또 아이들과 시부모님들과 생활하다 보면 들어가는 것만 많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올해는 보리를 심지 않기로 했습니다. 힘들게 해봤자 수매도 어렵고, 가격도 안 맞아서 괜시리 애태우느니 한 해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픔이 저희 집만의 문제겠습니까. 우리 동네 문제고, 온 나라 농촌의 문제입니다. 태풍에 추수한 쌀의 질도 떨어지고, 수확량도 줄었는데, 수매량 줄고, 가격 하락하고, 수입개방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어떻게든 사그러드는 농촌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며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키우고자 하는 저의 소박한 꿈이 벼랑 끝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미 쌀 수입개방을 정해진 사실로 보도하고 있지만, 2004년 WTO 쌀 재협상에서 관세화 유예 조치가 관철되어야 합니다. 통일이 된다고 생각해 보면, 그 후의 식량자급 계획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쌀값 보장을 위한 특별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 농민대회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 함께 갑시다"
농가부채, 쌀수입개방, 농촌복지...이제 농민이 나설때


항상 저희들을 위해 애쓰시는 이장님. 새벽을 깨우는 이장님의 방송, 오는 13일에는 "동네에 계신 분들에게 알립니다. 일어나시는 대로 5시에 마을회관에서 전국농민대회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로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동네분들에게 함께 권해주시기 바랍니다.

11월13일에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모두 대회장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바로 지난번 대선 직전에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김대중 후보자가 우리 농민들과 함께 한다고 공약을 이야기했는데 상황은 너무나 처참하니 말입니다. 농가부채 문제, 수입개방문제, 가격보장문제, 농촌 복지, 교육, 문제 어느 것 하나 앞으로 나아간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겠습니다. 저희가 단순히 쌀값 얼마 올려달라고 서울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장님, 항상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도 우리 마을에서 관광차 1대 빌려서 그 동안 쌓인 화도 풀고, 서울에 가서 농민들의 요구를 반드시 관철할 수 있도록 이장님의 협조를 진심으로 구합니다. 돼지 한 마리 내시겠다는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2002년 11월12일 수민 엄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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