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세련미
문화와 세련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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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일본 후지산과 일명 '북 알프스'라 불리기도 하는 키타호오다케를 등정했을 때이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다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 좁은 비탈길을 만나면 상대방이 부딪치지 않고 편히 걸을 수 있도록 서로 양보하며 미리 길을 비켜 주고, 심지어는 상대방이 안심하고 건너 올 수 있도록 한참을 서서 기다려 주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의 청결성과 예의 바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땀 흘리며 힘든 등산을 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여유와 세련된 매너를 잃지 않는 일본인들의 태도는 '동방 예의지국'에서 온 이방인을 금방 감동하게 만들었다. 요즈음은 우리도 많이 달라져 산에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자주 보지만 아직도 산을 오르고 내리다가 '툭' 부딪혀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지나치기 예사고, 길을 양보하며 미리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먹고살기 어려울 때는 예의를 강조 할 수 없다. '창름실즉지예절'(倉 實則知禮節)이라는 옛말도 있다. 즉, '창고에 가득 먹을 것이 있고 난 후에야 예의를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어려운 이웃이 많지만, 비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이어트 식품 시장 규모가 천문학적 수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먹는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여유와 세련미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도 여전히 투박하고 거친 제스처에 눈살을 찌푸리기 쉽고, 어디 여행을 나섰다가 불친절한 봉변을 당해 불쾌한 기분으로 돌아올 때도 많다. 조용한 산사를 찾았다가 덕지덕지 발라 있는 시멘트 길에 역겨움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비단 문화의 세련미는 예절이나 친절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제막식을 하면 세계제일,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 일쑤다. 그러나 진정한 문화적 가치는 양이나 규모의 크기에 있지 않고 질적 섬세함에 있다. 한국의 지리적 풍토만 생각해도 대형 규모의 토목 공사는 우리 체형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오밀조밀하고 아담한 균형미를 갖춘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석굴암이나 다보탑 또는 상감청자 등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 문화재가 결코 커다란 규모여서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사회는 양이나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가 만연되어 있다.

요즘은 정치의 계절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얼마 남지 않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원색적인 정치 공방도 끊이질 않는다. 정치가의 덕목에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말을 잘하는 것'일 것이다. 촉망받던 정치가가 말 한마디 실수로 하루아침에 낙마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는 말을 정직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재미있게 표현할 수가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똑같은 의미지만 직선적인 공격보다 에둘러 곱씹어 보면 볼수록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언어구사가 정치의 질을 높여준다. 그렇지만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아직도 감정과 격양된 표현만 난무 할 뿐 여유와 세련미를 찾아 볼 길 없다.

세계화를 강조하고 문화 시대를 주장하지만 진정 어떻게 하는 것이 세계화이고 문화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 에는 별 논의가 없다.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문화 민족임을 자부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세련된 문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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