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옆 사랑스런 시정이 무너졌다
우리집 옆 사랑스런 시정이 무너졌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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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전라남도에 위치한 담양에는 정자가 많이 있다. 이미 지방 문화재의 수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풍암정, 취가정, 관수정, 독수정, 명옥헌, 환벽당 등의 정자가 현실과 다소 떨어진 호젓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선비는 간데 없고, 관광객만 그 곳의 옛 정취를 즐긴다.

반면에 담양의 드넓은 들녘과 흔한 마을 어귀에 이름이 없는 정자들도 여기 저기 많이 널려있다. 이러한 정자를 마을사람들은 시정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농부는 이른 새벽 논에 나가 일한 후 여름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그 시정에서 편하게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낮잠을 즐기고, 농부들이 논에 나가거나 자기 집에서 점심과 저녁식사를 하는 틈에 아이들은 그 곳에서 즐겁게 논다.

어느 날 우리 집 바로 옆 그 사랑스러운 시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밖에 나가 새로운 시정을 짓는 다는 사실을 알았고, 매우 서글펐다. 그 시정은 동네 사람들의 울력으로 앞산 나무로 지워진 별로 오래되지 않은 정자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양철지붕으로 개조되었지만 녹슬은 지붕, 달아빠져 퇴색된 나무기둥과 마루바닥, 새로 고쳐 이어진 부분들에서 보여지는 이 동네사람들의 끈질기고 따뜻한 흔적들이 나에게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시멘트로 세워져 이러한 흔적이 죽어 가는 다른 마을의 시정들을 보면서 매우 긍지를 가졌고, 우리 동네에서 새 시정을 짓자는 의견이 있을 때마다 왜 우리 시정이 좋은 가를 마을 사람들에게 설득을 하였다. 그러나 새 이장은 몇 달 전 담양군내에서 마을마다 새로 지워지는 시정들을 부러워하면서 군청의 지원금 일천오백만원과 마을 사람들의 찬조금 천만원 정도를 합친 이천오백만원의 건축자금을 조성하였고, 우리 마을 사람들도 다른 마을처럼 새로운 시정을 꿈꾸었다.

나는 우리 마을 시정의 기초작업과 기둥작업 및 상량작업 등을 지켜보면서 조선가옥의 전통 기법이 이곳에서 재현되는 것을 알았고, 매우 흥미롭게 그 과정을 관찰하였다. 기둥 세우기, 기둥과 보의 결구, 상량 걸기, 처마 잇기, 처마선 잡기, 마루바닥 잇기, 복잡한 형태와 세부처리 등이 차례차례 진행되면서 정자의 뼈대가 완성될 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원과 네모의 조화로운 조합과 아래서부터 세워지고 엮어지면서 그 자체의 축적되는 무게로 구축되는 조선건축의 구조와 형태를 통해 나는 우리 조상들의 자연스럽고 독창적인 여러 생각과 멋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

시골의 마을마다 전통적 양식의 건물이 남아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있어 매우 고무적일 수 있고, 도시인들이 이 곳을 방문할 때 매우 옛스러운 품위와 정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담양의 마을마다 여기저기 새로운 시정이 증개축되면서 마치 선비들이 즐기던 담양의 고급정자처럼 지워지고 있다.

그런데 마을마다 마무리에서 변명들도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의 우스꽝스러운 문제를 연출하고 있었다. 첫째는 마지막으로 자연 색의 검푸르스름한 구운 기와 대신에 시멘트 기와가 올려지고 페인트공이 기와에 번들거리는 검정색을 칠한 다음, 흰색 페인트로 숫막새의 앞부분과 용머리 그리고 와당 등에다 작업과정과 관계없이 자기 나름대로 독창적으로 그리면서 회반죽색을 모방하고 있었다. 둘째는 비가 들이치지 않게 금속 스텐기둥을 새로 세운 후, 또 금속 셔터를 사방으로 설치하면서 시정의 의미를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마을에서 이같이 세워진 시정들을 다시 보면서 우리 마을의 시정이 그래도 품위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와의 처리에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그 정자를 볼 때마다 괴로워했고, 이 같은 결과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나라의 총체적인 문제가 유기적인 관계로 살아있지 못하고, 모두 따로따로 논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장한테 전화를 하였다.

"이장님! 접니다. 기와는 제가 어떻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기와지붕에 부들부들 떨며 올라가서 기와쟁이의 작업과정을 세심히 살피며 세 시간정도 준비해온 페인트로 수정을 하였고, 일을 마치고 멀리서 그 정자를 바라볼 때 무언가 했다는 상당히 흐뭇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전의 생활 속에서 친근하고 소박하게 사랑을 받던 우리 마을의 그런 시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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