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엄마 없어서 슬펐니?"
"애들아, 엄마 없어서 슬펐니?"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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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엄마 없어서 슬펐니?'를 읽고 엄마들이 나누는 일과 육아에 관한 난담을 싣는다. 계원숙(40 의사), 손미희(39 반미여성회), 이미혜(43 반미여성회) 세 '엄마'가 모여 쏟아놓는 이 시대 일하는 여성의 얘 키우는 이야기.

결혼 생활 2, 3년. 아직 시댁과의 관계에서 나의 자리라는 것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고 남편과도 아직 기(氣) 싸움 중일 때 첫 아이는 그렇게 온다. 이 때부터는 모든 것이 전쟁이다. 정해진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고 애는 왜 이리 더디 크는가. 일하는 엄마는 마음이 급하다. 출근 준비하랴, 어린이집 보낼 아이 챙기랴, 시댁에 일이라도 겹치면 아, 정말로 미치겠다. 그렇게 종종대며 10년, 집밖에서 자기 일하며 아이 기른 엄마들이 애들에게 묻는 말이다. "엄마 없어서 슬펐니?"

계원숙: 제목이 '짢'하죠?
손미희: 이 책 보면서 우리 애들에게 잘 해 주고 있나 반성이 되더라구.
이미혜: 나는 엄마들이 자기 자신과 자식 사이에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문제겠다는 생각이 들던데.
손미희: 자식이라는 게 이쁘긴 하지만 자기를 갉아먹는 존재일 수도 있는 건데, 그런 면에서 애들을 잘 대하고 있나 하는 반성을 하는 계기였어.
이미혜: 엄마들이란 자기 애들에 대해서는 맹목적일 수도 있는데 한 발 나아가 균형감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엄마한테 상당한 내공이 있어야 할거야. 애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어야 일과 애에 대한 일정한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손미희: 책 속에 딸 둘 기르는 엄마 얘기에 공감이 돼. 우리 딸 그렇게 곱게 길러 남의 집 아들 밥 해 주러 보내나 싶은 게. 나도 '어린이집'에 애들 맡기면서 갈등이 참 많았지. 우리 애들은 6개월, 7개월 때부터 맡겼는데 주변에서 '그때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어린애를 맡기느냐'는 시선들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또 잘 해야 한다는 생각과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해 느끼는 죄책감, 아들 없는 것에 대해 눈치 주는 것에 대한 반발심.

"여전히 육아는 여성, 엄마의 몫, 아빠는 다 어디로 갔나"
사회적 역할하고 있음에도 불구, 얘들 양육에 관해 사회환원의식 부족


계원숙: 근데 이 책에서 이상한 점 없었어? '아빠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손미희: 맞아. 나는 다 이혼한 사람들인 줄 알았어.
이미혜: 여전히 육아는 여성, 엄마의 몫이야.
계원숙: 이 책에서 애 기른 경험을 얘기하는 엄마들은 좀 특별한 사람들 아니야?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엄마들이고 그냥 보통 일상의 엄마들 얘기는 아니잖아?
이미혜: 그래서 좀 위화감이 들 수 있어.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균형 감각이 문제인데 이 책에 나오는 엄마들은 특수한 경우인데도 역시 얘기들이 자기 애들에게 치중되어 있어. '엄마'라는 사람의 이중적인 모습이야. 사회적인 역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들에 대한 얘기에서는 사회 환원적인 면은 없고 '내 아이에 대한 내 얘기'만 있어.
그래서 이 엄마들에 대한 불신이 들어. 실제로 애가 둘이면 보육비가 너무 비싸서 둘 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거든. 전에 나랑 같이 일하던 엄마들은 한 애는 데리고 출근을 했어. 애는 하루종일 일하는 엄마 옆에서 먼지 속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하고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고, 공장이란 데가 얼마나 위험한 게 많아, 그런 사이를 아슬아슬 왔다 갔다 하고, 그러다 엄마랑 같이 퇴근하고.
이런 모습이 일반 여성들의 현실이야. 여성 농민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쌍둥이를 기른 선배 언니가 있는데 하우스 일은 해 뜨면 너무 뜨거워져서 못 하기 때문에 주로 새벽일을 해. 그 날도 자는 애들을 안에다 두고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일하러 갔대. 일 끝내고 오면서 보니까 애들이 유리 창문을 깨고 깨진 유리조각 사이로 빠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그걸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손미희: 나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에게 애 맡겨 기르는 건 반대야. 할머니 인생을 봐. 자기 자식 기르고 손자들까지 길러주면 당신 인생이란 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이미혜: 그렇게 말하면 원숙이가 할 말이 없지.
계원숙: 진짜루 할 말이 없어. 첫째랑 셋째랑 10년 차이잖아? 임신했다구 하니까 엄마가 대뜸 '미친년, 애 다 길러주니까, 뭐 애들이 그냥 공으로 크는 줄 아나부지?' 하시는데, 아무튼 평생 처음으로 엄마한테 욕 얻어먹었어. 애들 기르는 것도 다 엄마방식으로 길러주시기 때문에 육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어. 근데 요즘 큰 애들이 사춘기라 할머니한테 자꾸 대들어서 좀 난처해졌어. 엄마한테는 '노후를 보장합니다' 라고 하지만 참 할 말이 없지.

손미희: 책에서, 사회적으로 잘 인정하지 않는 일을 하는 활동가 엄마의 아이들이 엄마의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얘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에 대한 얘기가 없네.
이미혜: 엄마의 가치관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문제겠지.
계원숙: 아이들은 엄마가 하는 일이 세상 속에서 어떤 위치의 것인지 아직 편견이 없을 걸.

손미희: 금강산에 가서 북측 여성들을 만났을 때 왜 누구는 결혼을 안 하고 누구는 애를 안 낳느냐고 묻는 거야. 우리는 결혼을 하거나 애를 낳으면 사회 생활을 제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잘 이해를 못하겠대. 내가 애들 때문에 이사하고 직장까지 1시간 넘게 출퇴근한다고 했더니 놀라워하더라구. 북에서는 나이에 맞게 탁아 시설이 다 되어 있어서 애들도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부모들의 활동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대. 육아의 근본적인 것은 국가 정책으로 나와야 해.
이미혜: 적어도 애들은 나라에서 키워줘야지.
계원숙: 먹거리, 놀이가 훌륭한 어린이집 시설이 있기도 해. 그러나 그런 시설과 내용에 대한 외부적 지원이 없다면 일반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지. 애들은 등 비빌 언덕만 있다면 어디서든 잘 자라. 그 언덕을 넉넉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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