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단상-노영필]아이들도 비웃는 연구발표회
[학교단상-노영필]아이들도 비웃는 연구발표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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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광주 운남중 교사]

"그냥, 평소대로 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들러리예요."
"전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잖아요."
"운동장에서 놀지도 못하게 해요."
".................."

연구발표회 때문에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눈에 잡힌 솔직한 모습이다. 조금 편하게 들어주는 것 같자 아이들의 불만이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어느 학교이건 연구발표회나 장학지도를 한다고 하면 교정엔 갑자기 생기가 돈다. 수업을 빼가며 청소를 한다. 수업준비를 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반 저반에서 데려간다.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도록 훈련에 훈련을 반복한다.

평소 방치했던 장비들을 수리하기 위해 업자들의 출입이 바빠진다. 이처럼 전에 없던 생기로 학교가 부산해지니 어색해지는 쪽은 아이들이다. 연구 수업을 누가 준비하는지, 주제는 무엇인지 평소엔 관심이 없는 교사들에게도 새삼스러운데, 아이들이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발표회 때마다 훈련에 훈련 반복

선생님들의 푸념도 만만치 않다. 일년에 연구발표회 서너 번 더 하면 정말 좋은 학교가 될 것 같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닦고, 쓸고, 칠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한다면 어찌 공교육이 무너질 틈이 있겠는가 싶기도 하다.

실은 연구학교가 지정되는 시점부터 문제가 있다. 몇 사람의 이해관계자들이 지정을 받아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연구분야를 공모하고 엄격하게 심사위원회가 구성되면 현장의 필요성이나 적용성을 적절히 고려할 수 있는 심사가 될 텐데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능력있는 교장들이 인맥과 정보로 연구학교가 지정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교무실에서 논의할 기회도, 학기초부터 준비할 과정도 없다. 신규교사들은 대세의 흐름을 몰라서 멍하니 쳐다보고, 알만한 교사들은 연극에 가까운 행사일게 뻔하다고 애초부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남은 것은 승진에 중요한 점수가 되고 이해와 관련될 듯한 사람들만의 관심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실무자들의 입장에서는 승진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할 사람이 없어 별 수 없는 살신성인이라지만 대다수의 교사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용하던 학교가 행사 2, 3일 전부터 한바탕 법석을 떠니 아이들에게 뻔히 속보일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다. 이런 학교의 연구발표가 아직도 잔존해 있으니 이를 전시성 군사문화라고 해야할지...

발표를 마치고 평가를 하는 자리도 마찬가지다. 자유롭게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개선점을 찾는 자리일 수가 없다. 평가자리에서도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직급순이다. 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로 이어지는 총평 순서에 어디 신선한 문제의식을 끼워 넣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권위가 세워지는 것도 아닐 듯 싶은데.

기획에서 평가까지 학생· 교사 주체로

학교문화가 바뀔 수 있는 길은 더 많은 것들을 개방시키고 수직적인 구조에서 수평적인 구조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교사들이 소외되고 아이들이 겉도는 연극 같은 공개발표를 통해서 교사들의 이해관계를 보존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획에서 평가까지 아이들과 교사가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그 성과가 아이들에게, 학교현장에 실질적으로 피드백 될 수 있는 과정이어야 한다.

몇 번씩 아이들에게 연습을 넘어 훈련을 시키는 몸살나는 발표수업이 아니라 아이들과 교사들이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연구수업의 주체가 되는 그런 즐거운 발표회가 되었으면 한다.

평가분위기도 수평적으로 열어두어 누구나 쉽게 문제점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해야 튀는 아이디어가 쏟아질 수 있다. 필요하다면 학부모들도 참여하면서 말이다. 그럴 때 일본의 교육학자 사또 마나부가 말한 대로 학교가 진정한 '배움의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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