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에서 벌레를 잡는 일
인간사회에서 벌레를 잡는 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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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에 배추밭에 농약을 쳤는데 벌레가 거의 죽지 않았다. 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눈꼽만 했던 청벌레들이 갓난아이 새끼손가락만하게 커 있었다. 거의 비만에 가깝도록 배가 댕댕하게. 벌레가 그렇게 살이 찌는 동안에 배추잎은 벌집이 되어 있었다.

다시 농약을 쳤다. 청벌레 파밤나방 거세미나방을 때려 잡는데는 직방이라는 비싼 '에이팜'으로. 어벙하게 밖에 나와서 쏘다니던 몇 놈만 죽고 나머지 대다수는 속잎 속에 숨은 채 펄펄 살아서 쌀알만한 똥을 싸재끼면서 배추의 생장점을 잘라먹고 있었다. 생장점을 잘라먹는 것은 배추의 현재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가!

친일했던 놈들도 배추밭에 벌레 잡듯 잡았어야

배추가 결구를 만드느라고 겉잎이 속잎을 감싸고 있으니 아무리 농약을 친들 우산 위에 빗물 떨어진 격일 수 밖에. 할 수 없이 농약통을 짊어지고 포기마다 속잎에 농약을 뿌려주기로 했다. 지금 그 벌레를 잡지 못하면 꽉 찬 배추속 속에서 그놈은 겨울내내 맛나게 뜯어먹을 것이었다.

500평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할 만 했다. 그 다음부터는 악으로 깡으로 어깻죽지의 통증을 견뎌야했다. 초통에 깨끗하게 때려잡았어야 했다. 좀 더 꼼꼼하게 농약을 쳤어야 했다. 이렇게 크도록 놔두지 않았어야 했다. 일제 때, 친일했던 놈들을 철저하게 잡아내서 선별해야 했었다. 독립군을 몇 명 죽였는지, 그들에게 총알을 몇 발 쏘았는지, 몇 명을 장애자로 만들었는지 배추밭에 벌레 잡듯 그렇게 잡았어야 했다.

독립군에게 반역죄라는 모자를 씌워서 사형을 선고한 판사가 누구누구였는지 벌레잡듯 찾아서 그 죄의댓가를 치르게 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의 자식들이 속죄하면서 햇빛을 가리고 살게 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일제 때 판사노릇을 하면서 독립군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다뤘던 자의 아들이 대명천지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권력을 쥐더니 이제는 대통령까지 하겠다고 설쳐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초통에 잡지 못한 벌레가 커도 너무 커서 진짜 농사꾼의 진을 다 빼고 있는 것이었다.

농민들을 끊어질 목숨줄 헐떡이는데
권력의 단맛에 빠진 벌레와 다르지 않는 놈들 분당, 탈당 소리



어깻죽지가 얼이 가는지 금이 가는지 분무기를 젓는 팔이 올라가지 않는 것을 겨우겨우 올려가면서 농약을 쳤다. 거만하기 이를데 없이 버젓이 배추잎을 뜯어먹고 있는 놈, 할랑할랑 햇볕 사냥을 하는 놈, 대갈통만 숨기면 안 보이는 줄 알고 꼬랑지는 밖으로 내놓고 있는 놈, 속잎 속에 꼭꼭 숨어서 계속 뜯어먹고 있는 놈, 배추잎 뒤에 숨어서 낮잠 자고 있는 놈, 배추 속만 뜯어먹고 이사 가고 없는 놈들을 색출해서 독한 농약을 뿌려줬다.

우리 농민들은 숨이 가파서 헐떡헐떡 끊어질것만 같은 목숨줄을 어찌어찌 붙잡고 있는데 권력의 단맛에 빠진 놈들은 분당이다 탈당이다 하고 자빠져 있는 벌레와 다르지 않은 놈들을 때려잡듯 그렇게 안간힘을 다 했다. 덜 죽을 것 같은 놈은 확인사살하듯 그렇게 덧뿌려줬다. 즉사하라고. 벌레를 즉사시키는 쾌감이 어깻죽지의 통증을 덜어주는 듯 했다.

인간사회 벌레 잡는 일 꼼꼼하게 해야

이틀 동안 부부가 5천평 정도 농약을 쳤다. 물 먹고, 오줌누고, 점심먹는 시간만 빼고 밤중까지 밭고랑을 걸어댕긴 결과였다. 앞으로 8천평이 남았는데...몸뚱이가 온 몸을 흔들면서 사래를 치는데 이 몸뚱이를 어찌 달래서 나머지를 해야할지.

그러니까 벌레를 잡는 일은 초통에 아주 철저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해야된다는 것이다. 농약값 아낀다고 미적거리다 벌레를 키우면 사람이 작살나게 되니까. 인간사회에서 꼬물거리는 벌레를 잡는 일도 그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의 모친이나 부친보다 더 악랄한 내성을 가진 후손이 나와서 '진짜 사람'을 물어 뜯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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