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오빠 이주노동자 응우엔쿠앙안
[세상보기]오빠 이주노동자 응우엔쿠앙안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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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미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상담실장

정들자 이별이다. 유달리 '오빠'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던 응우엔쿠앙안 오빠.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천국제공항행 버스에 올라탔다는 전화였다. 낮에 인사하러 들렀었는데, 또 전화를 해왔다.

고단하고 힘들었을 한국의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오빠. 너무나 고단했었을 한국의 삶을 알기에 떠나는 것이 마냥 즐거울 것 같은데 눈물까지 흘리며 "많이 보고 싶을 것이다", "한국이 그리울 것이다" 라고 한다.

응우엔쿠앙안 오빠는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베트남 송출업체의 과대 광고도 있었지만 부인, 아들, 딸과 행복한 삶을 살아 보고자 거액의 송출비용을 들여서 왔다. "한국에서는 희망이 있을 것 같아서 였다".

한국어도 전혀 못하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나주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처음 일주일 동안 너무 힘들어서 동료들에게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단다. 동료들이 조금만 더 참아 보자고 해서 일주일을 버티고, 또 일주일을 버티고 그러다 보니 괜찮아 졌단다.

그렇게 적응을 하면서 일을 했지만 응우엔쿠앙안 오빠는 임금체불을 당했다. 회사가 어려우니 조금 후에 갚겠다고 사장이 빌려 갔던 돈 마저 받지 못한 체 산업연수 기간이 끝나 버렸다. 다른 친구들은 그냥 베트남으로 돌아갔지만 응우엔쿠앙안 오빠는 그럴 수 없으셨나보다.

매달 24000원씩 원천징수를 해가던 인력관리 회사(연수생을 관리 해주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 해준다는 명목으로 의무적으로 연수생들에게 돈을 받는 곳)는 '나 몰라라'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동청의 진정을 통해서 절반은 받았지만 나머지 돈은 받지 못한 체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응우엔쿠앙안 오빠만 이런 모진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 제도'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연수는 전혀 없이 기본적인 한국어 교육이나 산업안전 교육도 이뤄지지 않은 체 단순노동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판 노예제도'이라고 목이 아프도록 외쳤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 이 제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한바 있지만 정부는 지난 7월15일에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을 13만 명을 더 늘리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이유는 내년 3월이면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불법체류자)을 다 추방시키고 나면 중소기업체의 인력난이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허울좋게도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의 취지는 개발도상국가에 첨단기술을 이전시켜 다같이 잘살아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도 인력난이 심각하기에 연수생을 더 들인다고 하고 있다. 이미 노동자임을 밝힌 셈이다. 누가 봐도 노동자임을 명백한데도 연수생이란다. 노동자의 권리는 쏙 빼고 일 만 하는 기계가 되라고 한다.

응우엔쿠앙안 오빠 사장만 나쁜 사람인 것이 아니라 외국인력도입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한국정부가 나쁜 것이고, 이주노동자 하면 불쌍하게만 바라보고 제도개선을 위해서 더욱 외치지 않는 우리모두가 나쁜 사람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와서 그랬는지, 한국어를 잘 모르겠거니 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응우엔쿠앙안 오빠는 광안(한국명)아! 하고 불리었다. 그래서 더욱 오빠라는 말을 좋아 하셨나 싶다. 오빠! 꼭 행복하십시오.

/류승미(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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