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못다 이룬 일, 이제는 내가 할라요
자식이 못다 이룬 일, 이제는 내가 할라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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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준배 열사 부모님을 만나

11년 전 실종되었던 개구리소년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우리 곁에 왔다. 그 유해발굴 현장에 다른 실종된 아이를 둔 부모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도 애를 잃어버렸소.'하며 끝내 눈물을 보이던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을, 먼저 보낸 그 부모의 마음을 가슴으로 느꼈다.

나 역시 부모가 되 보니 알겠더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것. 그런 자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일이라는 것을. 그 어떤 일이 죽음이라면, 그것은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말은 그래서 생긴 말이리라.

세상이 복잡해지고 수상해져 죽음조차 편치 못하다. 비명횡사한 이, 너무도 많다. 더 나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도 있다. 의문사. 죽음에 이른 원인을 알 수 없다해서 지어진 이름. 죽은 것도 억울하고 분한데,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니. 하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 아닌가. '턱'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듯, 의문사라 이름 지어졌지만 이미 그 원인은 모두다 알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의문사, 죽음에 이른 원인을 알 수 없다니...
5년만에 공권력 위법 행사 사망원인 밝혀져


김준배 열사. 그 역시 의문사였다. 아니 추락사로 발표되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지난 7월, 비로소 죽음의 원인이 밝혀졌다. 구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하였다고 인정되었다. 5년 만에 죽음의 원인과 그의 명예가 회복된 것이다.

97년에 사망한 그는 당시 26살이었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투쟁국장으로, 92년부터 수배를 받아오던 그는 광주의 오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에는 형사를 피해 도망가던 중 추락사했다고 내사종결 되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2000년, 민주화운동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사를 조사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출범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로 7월9일 추락사가 아닌 폭행에 의한 타살로 인정되었다.

"원한을 풀었지. 도망가다 떨어져 죽었다고 했었는디. 난 그 말 처음부터 안 믿었어. 그놈이 얼마나 운동을 잘 한디. 그렇게 죽을 놈이 아니여. 우리 준배가 그동안 얼마나 원통했으까." 아버지 김현국씨(67)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말한다. 5년 세월동안 썩을 만큼 썩었을 속이다.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오지는 못할망정 원인이라도 알게되고 명예회복된 것 그것으로 위안이 되는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동네사람들 시선이 힘들었어. 몹쓸 짓 하다가 경찰한테 쫓긴갑다고 92년에 수배령 내릴 때부터 수근댔었제. 우리 준배는 나쁜 짓 할 놈이 아니여.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드라고." 어머니 신춘미씨(59)는 그 긴 시간만큼 멍이 들었는지 가슴을 쓸어내린다. 혹여라도 동네에서 준배를 나쁘게 볼까 가슴 졸인 어머니다. 사실 밝혀져 TV에 나오니 사람들 보기가 떳떳하다며 명예를 회복한 준배 생각에 안심인 모양이다.

누나 둘, 남동생 하나를 둔 김준배 열사는 참 건강했다. 할아버지를 닮아 몸도 크고 운동도 잘 했다. 정 많아 나누기 좋아하고 의리있었단다. 고등학교 때부터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어려운 일이라고 피하지 않았던 그다.

아들이 먼저 한 농민운동, 아버지가 뒤이어
"준배 하나 잃었지만 더 많은 자식 얻었다"


"준배가 고등학교 때부터 수세(水洗)반대운동을 했드라고. 그때는 몰랐는디. 준배가 먼저 한 농민운동을 지금은 내가 하고 있제." 아버지 김현국씨는 보성군 농민회장이다. 그 역시 세상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파. 젊은 시절에는 정치에 관심도 많아 많은 일을 했다. 준배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그 아버지는 아들이 못다 이룬 길을 간다.

"우리 준배는 그래도 증인이 있어서 밝혀졌지만, 아직 못 밝혀진 자식들이 많어. 조사기간을 연장해야돼. 억울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야제. 죽은 것도 억울한디." 2000년에 출범한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기간은 2년. 너무도 많은 이들이 증거부족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사기간을 늘리라는 것이 의문사를 둔 가족의 주장이다. 세상이 변해 그동안 묻혀있던 일들이 다시 세상에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소외되는 사람 또한 생기는 모양이다. 한번 죽은 자, 두 번 죽이지 않은 세상이어야 할텐데 말이다.

"나는 준배 하나 잃었지만 더 많은 자식을 얻었어. 지난번 추모제때도 그렇게 많은 자식들이 찾아왔제. 하나 잃고 백을 얻은거나 마찬가지여." 어느새 시간이 흘러 가정 차리고 자식 낳은 친구들 보면 준배 생각이 더 간절해질텐데, 김현국씨는 그들 모두가 고맙단다. 모두 준배 같단다. "우리 준배 잊지 않아 고맙고, 이번 일 밝혀지게 도와줘 고맙고, 다 고맙제. 애 많이들 썼어."

자식을 가슴에 묻은 이 부모님은 그 가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기를 바란다. 준배가 미처 못한 일, 그가 바라던 세상을 위해 살 것이라 한다. 그것이 죽음이 죽음으로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살리는 힘이 되리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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