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잔치, 다시 생각하자
생일 잔치, 다시 생각하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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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빅뉴스라며 반 친구 생일이 자기 생일 앞날과 뒷날에 이어져 있다며 이럴 수가 있느냐며 들떠있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나를 몹시 혼란스럽게 했다.

우리 동네는 딸이 다니는 학교를 기점으로 해서 한쪽은 시내 중심 권에 있는 노른자의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한쪽은 재개발 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노후한 집들이 많은 곳이다.
재개발 쪽에 가깝게 사는 나는 아이를 학교 입학시키면서부터 주위 사람들이 은연중에 아파트 엄마들의 차마 바람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그 아파트 앞에 있는 대형 피자 집에서 생일 잔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집 두 아이들이 가져오는 생일 초대장은 보지 않아도 요일과 장소를 알 수가 있다.

대형피자집 통닭,콜라,케익 등이 기본 생일상


초대장을 쭉 받아보면서 알 수 있었던 것 중에 하나가 적어도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생일 잔치를 아이들이 학원을 가지 않는 토요일로 정한다는 사실이었다.
친구 생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학원을 빠져서는 안 된다는 엄마들의 묵시적 약속들이 반영된 것인 듯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이들을 초대하려면 적어도 그 아파트 앞에 있는 피자 집 정도에서 요즘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햄버거, 피자, 통닭, 콜라, 케익, 아이스크림이 기본 메뉴라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가 학교 다니는 3년 동안 초대장에서 이 이외의 상황을 본적이 없다면 못믿어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요즘의 생일 문화가 이러하니 딸아이에게서 그런 요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나는 우리 아이들 생일에 반 아이들을 불러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반 친구들을 상대로 초대장를 공식적으로(?) 돌리다 보면 여러 면에서 상처받는 친구들이 생길 것이 염려스러웠다. 초대받지 못한 아이들과 초대할 수 없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상처와 그 뒤에서 고민할 엄마들을 생각해야했다.

아직은 이 세상이 그다지 공평치 못해 점심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고 부모 없이 커면서 준비물 하나 없이 수업해야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내 아이 생일 초대로 인해 만에 하나라도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두려웠다.

그러면서 나도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인지라 아이들 생일 잔치를 놓고 갈등을 느껴야 했다. 결국은 아이들 요구보다는 내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 한켠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 아이를 설득해야했다.

이번에도 딸아이 생일을 앞두고 고민을 하다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요즘의 생일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선생님께선 수업시간에 생일 잔치에 대한 토론의 시간을 주셨던 것 같았다. 어느 날 딸아이가 학교에 돌아와 이번 생일 잔치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한 것 보면.

최고의 선물은 타인의 소중함 깨닫게 해주는 것


내 아이 생일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지나갔지만 참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태어난 아이가 부모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만큼 그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고자 하는 부모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아이의 기를 살린다는 진정한 의미는 다른데 있어야한다고 본다.
아이에게 자기존재의 소중함을 인식시키되, 자기존재의 가치도 남과 함께일 때 빛날 수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세상에 제아무리 잘나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하는 것이 아이가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생일 선물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요즘의 생일 문화에 대한 공유와 대안을 생각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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