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넷' 아줌마에게 '고함' 지르게 하는 세상
'쉰 넷' 아줌마에게 '고함' 지르게 하는 세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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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흔살 때 전대병원 미화원으로 처음 받았던 월급이 17만 5천원이었다. 14년이 지난 올해, 강산도 몇번은 변하고 세상도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365일 24시간 맞교대로 일하는 그녀가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49만 7천 5백원이었다.

최근 5년간은 월급이 1원도 오르지 않았다. 새벽 7시부터 그야말로 '똥물'을 뒤집어 쓰고 일하는데 어떤 보호 장치도 없다. 피부병에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해도 보상은 꿈도 못꾼다.

고된 노동에 5분이라도 쉴라 치면 관리인이 쫓아다니며 '일해라', '놀지 말라' 볶아대는 상황에 "청소하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여"라는 어느 미화원의 자조는 차라리 너무 순진하다. 쉰 넷, 하얀 머리의 전대병원 미화원 문옥자 씨(54)가 붉은 조끼 입고 거리에 나와 '고함'지를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전대병원서 14년간 미화원으로 근무
최저생활비도 못 미치는 월급, 열악한 근로 환경
쉰 넷에 '투쟁'하게 된 당찬 아줌마


"돈도 안주고 '말'처럼 부려먹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 거기다 '관리인'들이 쫓아다니면서 '일하라' 괴롭히는 고통은 말로 할 수가 없어"
실제 지난해 전대병원 미화원 도급회사였던 '한남개발'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최저임금법을 위반해 적발된 사실이 있다. 또 몇 달간은 임금을 체불하기도 했다.

짬시간 엉덩이 붙일 공간조차 없어 화장실 변기 구석이나 파이프 배관실에서 숨어 한 숨 돌리는 노동현실에 더해 인간 이하의 '취급'까지. 전대병원 미화원들이 80년대나 적용될 법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구호를 내 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 번은 퇴원한 환자가 준 떡을 짬시간에 먹다가 관리인한테 들킨 적이 있어. 그런데 시말서를 쓰라고 난리야. 나는 절대 못쓴다고 했지. 죄가 없으니께" 일을 끝낸 짬시간에 떡 하나 먹은 것이 시말서를 써야 할 만큼 큰 잘못인가. 문옥자 씨는 이 일로 두달간 관리인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결국 문 씨는 시말서를 쓰기 않았고, 덕분에 관리인에게 '찍혔다'.

관리인의 횡포에 당당한 요구,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그러고 나니 문씨는 '정말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틀린 것 틀렸다 말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 그전까지는 관리인의 '횡포'에 당하고 있었지만, 그때부터는 달라졌다. "이보소, 당신 아내가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쇼. 우리를 이렇게 대할 수 있나" "IMF라서 월급을 못 줘? 가슴아픈 사람이 늘어나서 병원은 돈 더 벌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

근로기준법 준수를 구호로 거리에 나섰을때도 문 씨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전대병원 미화원들의 노동 현실이 '쉰 네살'의 그녀에게 '스무살'의 열정과 정열을 불어넣어 주었다.

"처음에 데모하러 갔을때는 오메, 누가 볼까 무섭드라고. 그란디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 그래서 노조를 믿자, 그랬지" 대부분이 50대인 60여명의 전대병원 미화원들은 청소도구 대신 주먹쥔 손에 선전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투쟁기금'으로 월급의 10%에 달하는 돈 4만원을 60여명 전부 척척 내놓기도 했다. 결국 얼마전에는 병원측과 30% 정도의 월급 인상안에 합의하는 결과를 내오게 됐다.

"'고함' 질러 조금 좋아졌는디 억울해서 그만 못 둬"
근속수당, 노동환경 문제 해결 위해 오늘도 분주


"노조 총각들이 고생했제. 우리만 좋아지면 뭐해. 그 사람들도 좋아져야제."그래서 문씨는 '우리도 병원 노동자다'라고 씌여진 붉은 조끼를 협상 타결 후에도 한참이나 입고 있었다. 그렇게나마 투쟁하는 다른 '노조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였다.

14년 전 '밥 벌어 먹기'가 힘들어 3개월만 일할 생각으로 시작한 전대병원 미화원. 가끔 딸 자식이 이제 먹고 살만하니, 힘들고 창피한 청소일을 그만두라 해도 문씨는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이다.
"'고함' 질러 인자 조금 좋아졌는디 억울해서 그만 못 두제." 근속 수당이나 노동환경 문제 등 제 권리를 다 찾자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밀걸레를 잡은 문씨의 손길은 오늘도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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