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에 전시된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 경–1510) 작품인 <이상적 여인의 초상 – 요정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을 살펴보자.
시모네타 베스푸치(1453-1476)는 1453년경 이탈리아 제노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16세에 그녀는 탐험가이자 지도 제작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아메리카를 발견한 탐험가)의 먼 친척인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하여 피렌체로 왔다.
특출난 미녀인 시모네타는 피렌체에서 이름을 날렸다. 메디치 형제인 로렌초와 줄리아노도 미인 시모네타에 관심을 가졌다.
화가 보티첼리 역시 시모네타를 흠모했지만 감히 내색도 못했다.
그런데 시모네타 베스푸치는 1476년 4월 26일 밤에 폐결핵으로 22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었다.
보티첼리는 시모네타가 죽은 지 9년이 지난 1485년에 초상화 그림을 완성했다. 패널에 템페라와 유화물감으로 그렸고, 크기는 81.8+51cm이다. 이미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과 <비너스와 마르스> 그림에서 시모네타를 모델로 하여 비너스를 그렸다.
그러면 <이상적 여인의 초상 – 요정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을 자세히 감상하여 보자.
초상화는 옆면 얼굴로 반신상(半身像)인데 모습이 약간 창백하다.
눈도 오른쪽 눈만 그려져 있고 왼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진주와 깃털로 장식한 머리모양이다. 보티첼리는 극도로 정교하게 머리모양을 그렸다.
시모네타의 머리 모양이 보티첼리가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당시 피렌체 여인들의 머리 모양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의 머리모양은 19세기 시인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프랑스 시인 장 로맹(1855-1906)은 보티첼리를 재발견한 프랑스 상징주의 작가(시인·소설가 ·문필가)의 한 사람으로 그의 시집 『깃털(1897년 6월)』에 ‘어떤 초상화에 관하여’란 시를 수록했다.
“지금은 스러진 토스카나의 옛 왕궁 바닥에 누워있는
그것은 창백한 청년의 섬세하고 갸름한 얼굴
사악한 천사의 눈을 가진 열정적이고 완벽한 모습
그래서 불길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분위기의 초상화.
보티첼리라 이름 쓰여진 푸른 붓꽃이 흩뿌려진
오렌지 빛에 가까운 적갈색의 길게 늘어진
뻣뻣한 금발로 반쯤 뒤덮인 당당한 이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듯 수그러진 가냘프고 긴 목.
태생은 고귀하나 침울한 분위기를 띤
강렬하나 병약하고 고통에 가득 찬
성모와 패륜녀의 매력이 동시에 새겨진 모습.
주교의 총아인지 재치있는 오필리아인지 알 수 없는
그의 초록빛 눈 속에는 기괴한 미약이 흐르는 듯
고통과 유혹과 광기를 한 몸에 담고 있는 불가사의한 모습.”
(도미니크 티에보·장희숙 옮김, BOTTICELLI, 열화당, 1992, p 86 )
아울러 시모네타가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에도 주목한다. 이 목걸이는 1434년과 1443년 사이에 추기경 루도비코 트레비산이 소유하고 있다가, 1465년에는 교황 파울루스 2세의 수집품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1487년에 다시 피렌체에 있는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의 소장품에 귀속되었다.
따라서 이 그림의 제작 시기를 위대한 자 로렌초가 보석을 구입한 직후인 1487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키아라 바스타외 지음 · 김숙 옮김, 보티첼리, 2007, p 132)
그런데 목걸이에 있는 보석은 “네로의 인장”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메디치가의 보석 콜렉션은 미술가들에게 자주 등장하였고 보티첼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비아 말라구치 지음 · 문경자 옮김, 보티첼리, p 73)
(참고문헌)
o 바르바라 다임링 지음·이영주 옮김, 산드로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5
o 도미니크 티에보 · 장희숙 옮김, BOTTICELLI, 열화당, 1992
o 실비아 말라구치 지음 · 문경자 옮김,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7
o 유경희 지음, 나쁜 그림, 매경출판, 2017
o 키아라 바스타외 지음 · 김숙 옮김, 보티첼리, 예경,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