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요, 자식보다 이웃이 훨 낫제요?"
"할매요, 자식보다 이웃이 훨 낫제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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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디어 해님이 반짝 떴다. 얼마나 고마운지. 효인이를 어린이집 가라 이르고 지환이를 태우고 고추밭으로 향했다. 남편이 1시간쯤은 먼저 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랑 입구에서 서성인다. 뭣 고추가 팍 익지도 않았는데 따냐며 투정이다. "이 사람아 하루가 멀다하고 고추가 말라 죽는데 그기 문제가. 하나라도 빨리 따야 돈이제"

때아닌 태풍과 장마로 고추는 어느 밭이나 구분없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덩달아 2500원 대를 헤매던 고추값도 오르고, 태풍에 쓸려 나가고 말라죽는 쪽이 있어야 그 덕에 고추값 올라 재미보는 쪽이 있고 어쩔 수 없이 불평등한 세상이다.

따라온 아들 지환이 첨에는 고추고랑에서 붉은고추도 제법 따며 놀더니 또 찡찡거리고, 그 덕에 남편은 아이 안고 전방에 간다. 막걸리 두병에 아이스크림 3개 안주는 고추장에 마늘몇알 그리고 고추밭 즉석 요리 풋고추....도와주러 오신 대리띠 할매 2잔에 나 한잔 역시 막걸리는 봉양 막걸리다.

홀로 사는 할매 생신, 한놈도 안 찾아온 자식놈
"할매요, 우리 맛있는 고기 먹으로 가시더!"


더군다나 일하다 들이키는 막걸리는 거침없이 꿀떡꿀떡 넘어간다. 기어코 남편은 아이를 안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농민회 사무실로 나가고 대리띠 할매랑 나랑 싸게 고추를 딴다. 이웃집에 홀로 사시는 그 할매가 오늘 76세 생신이란다.
근디 자식놈들이 벌초때 생일잔치를 하자며 일요일날 한놈도 안 찾아왔단다. 그리 자식자랑 해 쌌더니 정작 생신때 아무도 안 온다. "할매요 점심때 우리 맛있는 고기 먹으러 가시더!" "애고 일해야제, 그럴 시간 있나" "맹 점심 먹어야 안 되는교?"

우리는 의성읍에 나가 돼지갈비 4인분에 공기밥2개(할매가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밥정이 없다고 물렀음)을 9,000원으로 해결하고 커피까지 맛보고 왔다.
"할매요, 자식보다 낫제요?"
"그래. 이붓자식이 훨씬 낫다."

그리 고기 좋아하시던 시어머님이 생각 났다. 생전에 이리 고기집에 모시고 가지도 잘 못했었다. "할매요, 동네에는 얘기 하지 마소. 즈그 어마이한테는 그리 하지도 않았다고 욕하니도!" 오후에는 아이들과 고추 따는 일이 더욱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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