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는 1480-1485년까지 ‘이상적 여인의 초상–요정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을 그렸다.
그런데 보티첼리는 1480-1485년 중에 <봄 1482년>, <아테나와 켄타우로스 1482년>, <비너스와 마르스 1483년>, <비너스의 탄생 1484-1485년>, 데카메론 이야기를 다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연작 4편 1483년>등 여러 작품을 그렸다.
그러면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비너스와 마르스, 템페라 69.2 + 173.4cm>를 감상하여 보자.
사랑의 여신 비너스(라틴어는 베누스, 그리스어는 아프로디테)가 잠에 빠져 있는 전쟁의 신 마르스(그리스어는 아레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보티첼리는 요절한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비너스의 모델로 하였는데, 아름다운 머리 단장을 한 비너스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옷을 통해 몸매가 드러난다.
마르스는 폭력적인 욕망을 구현하는 신으로 하얀 천 조각 하나로 중요한 부분만 가린 채 거의 발가벗은 모습이다.
그들은 도금양 나무가 만든 작은 동굴에서 서로 마주 보고 누워있다. 비너스의 봉헌물인 도금양 나무는 이곳이 비너스의 영토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마르스 주변에는 네 명의 아기 사티로스들이 마르스의 투구와 갑옷, 창을 가지고 노는데, 이들 중 한 사티로스는 마르스를 깨우려고 그의 귀에 소라고동을 불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에 의하면 사티로스는 술의 신 바쿠스의 시종인데, 머리에 뿔이 나고 염소 다리에 꼬리가 달려 있다.
한편 두 명의 사티로스는 마르스의 창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맨 뒤의 사티로스는 자기에게 너무나 큰 마르스의 투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다.
오른편에 있는 사티로스는 마르스의 가슴받이 쪽으로 기어들어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사티로스의 모티브는 악시옹이 그린 <록산느의 결혼>이라는 그림에 대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작가 루키아노스가 묘사한 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또한 소라고동을 불고 있는 사티로스의 모티브는 아라토스 데 솔레스의 교훈시 <진귀한 동물>애 나오는 바다의 신 트리톤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폴리치아노는 1482년에 이 글의 그리스어 필사본을 구했는데, 보티첼리가 1483년에 <비너스와 마르스>를 그리면서 이 책의 영향을 받았음이 확실하다.
보티첼리의 다른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학 원전 뿐만 아니라 고대의 고고학적 유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선 도상은 고대 그리스의 작가 루키아노스에게서 따온 것이고, 비너스와 마르스의 자세는 바쿠스와 아리아드네가 묘사된 고대 석관에서 유래한다.
한편 비너스와 마르스는 연인관계이다.
불(火)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의 아내인 비너스는 헤파이스토스가 못생기고 절뚝거리며 항상 땀에 젖어있자 그를 멀리하고 잘생긴 마르스와 연애를 하였다.
그리고 마르스 사이에 큐피드 등 7명의 아이를 낳았다.
이 그림이 사랑을 주제로 한 것으로 보아 역시 결혼식 그림으로 쓰였을 것이다.
주문한 사람은 아마도 베스푸치 가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마르스의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말벌과 벌집을 통해 알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 말벌은 베스파인데 이는 베스푸치를 연상시킨다.
한편 이 그림은 <봄>과 마찬가지로 신플라톤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비너스는 고대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마련한 아이네아스의 어머니이고, 마르스는 고대 로마 제국을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아버지이다.
보티첼리는 로마인들의 모계와 부계를 모셔와 피렌체에도 평화로운 황금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박영택 지음,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 2019, p 112)
(참고문헌)
o 구예 지음·정세경 옮김, 관능과 도발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도도, 2007
o 김현, 김현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을유문화사, 2022
o 도미니크 티에보 정희숙 옮김, 보티첼리, 열화당, 1992
o 바르바라 다임링 지음·이영주 옮김, 산드로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5
o 박영택 지음,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 스푼북, 2019
o 실비아 말라구치 지음 · 문경자 옮김,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7
o 키아라 바스타 외 지음 · 김숙 옮김, 보티첼리, 예경,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