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가고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가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24.08.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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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라는 말이 바보 같은 말로 들린다. 그렇게도 싱거운 말이 없을 것 같은 요즘이다. 더위가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 같다. 어느 절 옆으로 난 둘레길에 갔는데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열파가 후끈했다.

아내는 차 안에 있고 나 혼자서 겨우 30여 분 둘레길을 걸었을 뿐인데 온몸이 비를 맞은 듯 땀투성이가 되었다. 둘레길은 나무숲이 가려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그늘인데도 걸으면서 이러다 갑자기 쓰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

당초엔 기세 좋게 둘레길을 완주할 생각이었는데 솟아나는 땀방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이다. 맹독성 폭염이라고 해야 할까. 올해 여름의 더위는 거의 재앙 수준이다.

하긴 여름마다 그해 여름이 가장 덥다고 투덜거린 일을 생각하면 여름은 언제나 처음 겪는 것처럼 덥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작년 여름도 매우 더웠던 것 같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내 친구의 부친이 별세하셨을 때 함평으로 문상을 가던 그해 여름도 이렇게 더웠다. 걷는 길이 불길에 휩싸인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온열로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여름은 이미 계절의 이름에 새겨져 있듯이 열매들이 열려 크고 실한 내용을 갖추기 위해 뜨거운 햇볕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과실은 잘 익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지친다. 어릴 적엔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개울에 멱을 감으러 가고, 원두막 멀리서 참외 서리도 하고, 여름의 기억은 더위보다는 자연과 합일되는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여름의 나라에 여행간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 시절 여름은 그저 아름답게만 기억된다. 밤에는 마당 한 켠에 매캐한 모깃불을 피워놓고 수박이나 참외를 먹으며 무더위를 식히고, 마당에 깔아 놓은 덕섶 위에 누워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기도 하고.

여름의 기억은 아무튼 아름답고 찬란했다. 그랬는데 이제 나이 들어 찾아오는 여름은 반갑지 않은 손님 같다. 에어컨을 틀자니 전기료 부담 때문에 틀다가 곧 끄고 만다. 하느니 더울 때마다 일없이 하는 찬물 샤워가 딱이다.

우리나라는 점차 아열대 기후대로 바뀌고 있다 한다. 제주나 남도 근해에는 아열대 지역의 새나 물고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앞으로 50년 후에는 사과 맛을 볼 수 없을 것이고, 소나무도 반 이상의 지역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모르긴 하지만 어쩌면 지구도 살려고 이러는 것일지 모른다. 화산폭발은 지구 내부에 가스가 차서 배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점점 심해지는 더위도 말하자면 지구의 생리작용인 것이다.

지구는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 간빙기가 있는데 현재 지구는 간빙기 상태에 있다고 한다. 더 더워지는 것은 인간의 석유문명 때문이 아니라 지구역사의 진행에서 자연스런 진화 과정이라는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올 여름이 다가오는 여름들에 비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오는 여름들은 올해 여름보다 더 더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더 덥다니, 어디 먼 북쪽 나라로 도망갔다 오는 계획이라도 세워야 할까. 아내는 강원도에 가서 한달 정도 있다 왔으면 하는데 거기라고 시원할 것 같지 않다.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은 우리의 선조들이 행한 지혜를 빌리는 것이 제격일 것 같다. 선조들은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고, 그리고 부채와 죽부인으로 여름을 났다. 열대야가 이렇게 오래 계속되기는 1백18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아직도 한참 더위가 더 계속될 것이라니 불바다에 사는 듯하다. 더위를 피할 도리는 없고, 그냥 집 안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옛날 음악을 듣거나 젊은 시절 못다 읽은 책을 읽는 것으로 여름을 나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피서법이다.

나는 매일 아침 6시 반쯤 아파트 단지 뒤에 있는 숲에 가서 맨발걷기를 1시간 정도 한다. 그 시간엔 한낮처럼 덥지는 않다. 발바닥에는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 한방에서는 오장육부로 통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맨발걷기로 자극을 주면 온몸이 활기로 반응하는 느낌이다.

가뜩이나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라니 이 ‘여름도 무사히’ 지내려 여러 가지로 전투 중이다.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가고…’ 옛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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